살인의 사계절 : 가을 소나타 살인의 사계절 시리즈 Four Seasons Murder 3
몬스 칼렌토프트 지음, 강명순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나이들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다.

한때는 공포물을 즐기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소심해진 것 같다. 어쩌면 가상의 공포를 즐기기엔 현실의 공포를 더 알게 된 탓이 아닐까.

그래도 무더위를 식혀 보겠다는 생각에, <살인의 사계절>시리즈 중 '가을 소나타'를 읽었다.

<살인의 사계절>은 굉장히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살해된 사람, 즉 죽은 자가 말을 건넨다. 사건의 담당을 맡은 말린 포르스 형사를 향해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 피해자의 독백을 들을 수 있는 건 독자의 몫이다. 아무도 죽은 자의 말을 들을 수 없지만 사건 현장은 죽음을 이야기한다. 형사는 진실을 밝혀내어 죽은 자의 말을 전하는 자다.

주인공 말린은 남편 얀네와 이혼 후 딸 토베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여름이 끝날 무렵에 사건이 터졌다. 말린에게 쫓기던 여성 살인마가 토베를 납치한 것이다. 다행히 토베의 목숨을 구하고 난 뒤, 말린과 얀네는 토베를 위해 이혼 10년만에 재결합을 했다. 서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린은 엄마로서 딸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다. 자꾸 술에 의지하면서 툭하면 얀네와 싸웠다.

말린은 형사이기 전에 한 소녀의 엄마이며 고통을 겪는 인간이다. 그녀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유명한 홈즈처럼 명쾌하지 않다. 아주 차근차근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면서 형사들의 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듯한 그들의 모습은 형사로서의 명석한 판단력이나 추리력을 흐릿하게 만드는 듯하다. 린셰핑 경찰서에는 말린 포르스 형사뿐 아니라 스벤 셰만 반장, 요한 야콥손 형사, 발데마르 에켄베리 형사, 카림 아크바르 서장, 마르틴손 형사가 일하고 있다. <살인의 사계절>시리즈를 읽다보면 주인공 말린 이외에도 다른 형사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건의 용의자가 아닌 사건을 담당한 형사들의 사적인 부분까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사건에 관한 집중력을 흐트려 놓는 느낌이다. 왠지 범죄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로서 가진 뛰어나고 냉철한 수사 능력보다는 인간적 고뇌로 방황하는 면을 부각시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함을 드러내려는 것 같다. 물론 그런 부분들이 이 소설을 더욱 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요소일 수도 있다.

처음에 이 시리즈를 읽을 때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제까지 봤던 범죄소설에서는 형사 혹은 탐정의 개인적인 부분이 나올 여지가 없었다. 중요한건 누가 범인이고,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느냐를 알아내는 것이니까. 그런데 <살인의 사계절>에서는 모든 범죄가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든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자각하게 만든다. 유능한 형사도 자신의 집에서는 문제엄마 혹은 문제아빠일 수 있고, 부부 간의 심각한 문제로 괴로워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스웨덴 사회도 2008년부터 사회적 격차가 더 커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갈수록 팍팍하고 고된 삶을 살게 된 모양이다. 불황의 시기에 사회는 더욱 거짓으로 물들고 범죄 또한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결국 모든 사건은 인간의 탐욕과 잔인한 본성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이번 사건은 악셀 포겔셰 백작의 소유였던 스코그소 성을 구입한 예리 페테르손이 살해되어 해자에 빠진 채 발견되었다.

'지독하고 집요한 남자.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계. 시체를 밟고 넘어가는 남자.'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그 남자는 바로 살해된 예리 페테르손이다.

죽음은 생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앗아간다. 그런데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아둥바둥 더 가지기 위해 잔인해진다. 누가 알겠는가? 죽음의 의미를.

<살인의 사계절>은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 악몽이 아닌 현실로 느껴지는 공포를 보여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살인 사건으로 시뻘겋게 물들고 만다. 술에 취해 고통을 견디는 말린의 모습처럼 인간의 잔혹함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죽은 자의 독백을 통해 더 늦기 전에 깨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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