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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소피 옥사넨 지음, 박현주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에스토니아?
세계지도를 펼쳐보고 어디쯤인가 찾아보았다.
1917년 에스토니아 공화국으로 독립했으나 핀란드와 영국의 지원을 받아 소련과 휴전조약을 맺었다.
1940년 공산당이 승리하여 구소련에 가입했다가 잠시 독일이 점령하고 다시 독일의 패망으로 구소련에 복귀했다.
1991년 구소련 보수파의 쿠테타 발생으로 완전독립을 선언했다.
갑자기 무슨 세계사 공부인가 싶을 것이다.
<추방>이라는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고,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그런데 궁금해졌다. 왜?
어쩌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에스토니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세 명의 여인이 나온다. 잉겔과 알리데 그리고 자라.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여자들의 삶은 불안한 약자일 수밖에 없다. 한 남자를 사랑한 두 여자가 자매라는 사실은 이미 불행을 예고하는 듯하다.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자가 보일 리 없다. 사랑때문에 가슴 아픈 여자는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한다.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비극이 만들어낸 삶이다.
남자들에게 성적 노리개가 된 여자는 자신이 꿈꾸는 삶을 위해 집을 나섰지만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를 잘 모르지만 주변국가의 영향을 받으며 버텨온 역사가 어쩐지 세 여인의 삶과 겹쳐지는 것 같다. 과거의 단편적인 사건들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을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비극은 존재하는 것 같다.
왜 이 소설이 핀란드 베스트셀러 1위이고, 핀란디아 문학상 수상을 했는지는 알 것 같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소설의 진정한 깊이를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에스토니아에 대해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강렬한 로맨스와 오싹한 서스펜스"는 기대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느낌의 소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강렬하거나 자극적인 느낌보다는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운명의 굴레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함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소설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는 순간은 더 극적인 것 같다.
잉겔과 린다가 러시아로 떠난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추방...... 잉겔은 몰랐던 것 같다. 어떻게 자신이 추방되었는지를.
러시아로 추방된 잉겔과 린다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잉겔의 손녀딸 자라는 어떻게 밑바닥으로 전락하게 된 것일까?
알리데는 철저하게 현실주의자로 살면서 행복했을까?
잉겔과 알리데가 서로 헤어진 이후의 시간이 싹뚝 잘려나간채 다음 세대의 자라가 등장한 것은 굉장히 뜻밖이다. 운명적인 연결고리는 좋지만 서로에게 비어있는 시간들이 추방이라는 단어를 더욱 또렷하게 만드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특히 자라는 너무나 처참한 상황을 자신만의 의지로 버텨내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 자라의 불행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마치 알리데의 숨기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처럼 그냥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자라에게는 묻을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 벗어나야 할 현실이기에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라는 자신의 모든 불행을 나타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자라는 다른 곳에 있다고. 그리고 할머니가 남겨 준 사진 한 장만으로 알리데를 찾아 나선다.
잉겔과 알리데의 이별 이후의 삶은 추방과 단절이지만 잉게의 손녀딸 자라가 알리데를 만나는 순간 단절되었던 그들의 운명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사회는 그들을 다른 식으로 분류하고 관리한다. 불순한 민족주의 범죄자들.
인간은 사회가 만든 틀에 갇혀 본연의 인간다움을 드러낼 자유조차 없다.
에스토니아에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