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하차 - 잘 나가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기타무라 모리 지음, 이영빈 옮김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 인생에서 마흔은 어디쯤 온 것일까?

한창 정신없이 걸어갈 때는 멈추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가던 방향을 잃어 헤맬 수도 있다.

'도중하차'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든 반갑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이유들로 인해 발목잡힌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왠지 갑자기 '도중하자'가 된 느낌이랄까.

유명 잡지사 편집장으로 승승장구하던 마흔의 가장이 어느 날 사표를 낸다. 그 이유는 공황장애.

여행잡지라는 특성상 잦은 출장으로 비행기를 자주 타야 하는 그가 도저히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일말의 자존심.

아내에게 허락을 구하고, 사표를 낸 그는 여섯 살 아들과의 여행을 계획한다. 아내에게 받은 천만원으로.

이 책은 공황장애로 무직이 된 일중독자, 마흔의 가장이 털어놓는 진솔한 자기고백이다.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어찌보면 곁에 든든한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만약 혼자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버티지 않았을까. 현실적으로 마흔이란 나이에 대책없이 사표를 냈다는 건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공황장애로 비행기 타기가 어렵다면 출장이나 외근이 없는 일로 바꾸면 되는 것이고, 증상이 나아질 때까지만 쉬면서 치료하면 되는 것이다. 이건 순전히 공황장애의 고통을 잘 모르는 사람의 추측일 뿐이다. 그는 공황장애로 고통을 받기 전까지는 일밖에 모르는 일중독자였고, 나름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이다. 물론 과다한 업무로 가정에 소홀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그의 아내는 말없이 그를 응원해줬다.

그래서 아픈 몸과 마음을 쉬면서 아들과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아프다는 걸 남들에게는 숨길 수 있어도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들킬 수밖에 없다. 그가 아들과의 여행을 계획한 건 모처럼 생긴 시간을 아들과 더 많이 보내면서 제대로 아빠노릇을 하려는 거였다. 그런데 도리어 여섯 살의 어린 아들이 아빠를 걱정하고 챙겨줬다. 무뚝뚝한 아내는 말없이 그를 이해하고 보듬어줬다. 공황장애로 인해 그의 일은 도중하차했지만 그의 인생은 새롭게 재출발하게 되었다.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표현을 너무 식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인생 이야기를 보면서 이해할 것 같다. 인생의 길은 빨리 뛰어간다고 해서 더 좋은 것도 아니고, 조금 느리게 걷는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잠시 쉬어갈 때가 있어야 남은 길도 끝까지 잘 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성공이라는 것도 그 기나긴 길 중에서 잠시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남들보다 조금 먼저 높은 산에 올랐다고 으시댈 것도 없고 아직 가야할 정상에 못 올랐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근래에는 당당하게 자신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했던 공황장애가 유명 연예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증상으로 알려진 듯하다. 이 책의 저자 역사 평범한 가장으로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황장애라는 병이 생긴 것이다. 남들에게 숨기고 싶어서 사표까지 냈던 그가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누구나 자신의 멋진 면만을 보여주고 싶은 법인데 연약하고 부족한 면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용기라고 생각한다. 현재 공황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세상에 공황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공황장애는 반드시 고칠 수 있다는 믿음도 준 것 같다.

그의 공황장애를 치유해준 사람은 정신과 의사도 상담사도 아니다. 바로 그의 사랑하는 가족들이다.

마흔즈음, 당신은 오늘도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가? 이제는 도중하차가 두렵지 않다. 다만 바삐 가느라 함께 가는 이들의 손을 놓을까봐, 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할까봐 두렵다. 앞에 놓인 길만 보지 말고, 곁에 함께 하는 가족을 바라보자.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기다려주는 가족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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