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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로라 리프먼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제목이다.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라는 말이 섬뜩해지는 이유는 내가 원하지 않는 상대방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암시 때문이다. 이건 공포영화의 주인공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현실에서는 누구나 원치 않는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소녀들을 노리는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되어 강간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녀가 있다. 지금은 남매를 둔 가정주부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엘리자가 그 주인공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 도착한 편지는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바로 그 놈, 연쇄살인범 월터 보먼이 보낸 것이다. 그 놈은 현재 감옥에 수감 중이고 사형집행일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왜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 것일까?
이 소설은 연쇄살인범을 쫓는다거나 쫓기는 긴박감은 없지만 사건의 피해자였던 엘리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이미 20년이나 지난 범죄 사건이 살아남은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크나큰 고통을 준다는 걸 그 이외 사람들은 모른다. 아무도 자신이 그런 끔찍한 일을 겪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
불행을 맞닥뜨린 사람의 마음은 원망이 클 것이다. 그러나‘행복해야 할 내 삶에 왜 불행이 끼어들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원망만 한다면 정말로 그 삶 자체가 불행해질 것이다.
연쇄살인범 월터의 마지막 희생자였던 홀리라는 아름다운 소녀, 그녀의 엄마 트루디는 자신의 불행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엄마의 심정이야 가슴을 도려낸 듯 아픈 일이겠지만 엘리자를 만나서 그녀가 한 행동은 너무나 경솔하고 이기적이다. 세상에 아무리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도 자신의 가족만 안전하다면 아무 상관없을 그런 류의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를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접하게 되면 분노를 참기 힘들다.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사형제도를 반대하고 싶지만 연쇄살인범은 예외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가장 궁금한 것은 연쇄살인범 월터다. 엘리자를 살려줄 정도의 이성을 가졌다면 왜 다른 소녀들은 죽인 것일까?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고의적인 살인을 반복적으로 저지른다는 건 미치광이 짐승의 짓이다. 그런데 월터가 엘리자에게 편지를 보낸 진짜 이유는...... 그가 어디까지 진실을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엘리자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언니 보니 때문에 남들 눈치만 보며 살았던 엘리자가 불행한 사건까지 겪은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엘리자는 그 사실을 알았고 더 이상 불행이 자신을 옭아매지 않도록 현명하게 살아왔다. 사랑하는 남편 피터와 아이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