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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2
오채 지음 / 비룡소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열여섯 살, 박초아의 여름 일기를 본 느낌이다.
한창 사춘기일 나이에 엄마의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드는 초아는 항상 엄마 곁을 떠나고 싶어하는 아이다. 그런데 초아네 집에 큰 일이 벌어진다. 갑자기 집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은 것이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엄마, 남동생 청록이와 초아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청록이 아빠는 초아에게 청록이를 부탁한다는 메시지만 남긴 채 떠나고,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저씨(청록이 아빠)를 버릴 거라고 선언한다. 엄마는 열아홉 나이에 가출해서 초아를 낳고 그 뒤에 청록이 아빠를 만나 청록이를 낳은 것이다. 초아는 청록이 아빠에게 한 번도 아빠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좋은 아저씨였는데 엄마를 잘못 만나 발목이 잡힌, 불쌍한 아저씨라고 초아는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집이 없어진 초아네 가족은 외할머니가 계시다는 솔섬에 가게 된다. 엄마는 가출한 이후 처음 고향집에 가는 건데 그 이유가 참 불손하다.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남긴 가보를 찾기 위해서다. 엄마를 오랜만에 봤는데도 모른 척 외면하는 외할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초아는 엄마의 뻔뻔하고 이기적인 모습이 싫다. 솔섬에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동창이라는 춘삼이 아저씨 그리고 시호라는 열여덟 살 남자애뿐이다. 한적한 솔섬에서 외할아버지가 남긴 보물을 찾으려는 엄마와 함께 초아와 청록이는 여름을 보내게 된다.
청소년소설이라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제 곧 사춘기를 겪을 우리 아이의 마음을 미리 읽는다는 심정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재미가 있다. 퉁퉁거리며 엄마에게 반항하는 초아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미래의 우리 딸은 나를 어떤 엄마로 생각할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아무리 남들에게 사기를 치고 허풍을 떨어도, 같이 살던 남자는 버려도, 절대로 절대로 자식만은 버리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진 엄마의 모습이 초아에게는 쇼처럼 보인다. 그런데 솔섬에서 지내면서 뭔가 변한 느낌이다. 마음을 열 것 같지 않던 외할머니가 서서히 초아와 청록이에게 애정을 보이고, 춘삼이 아저씨는 열정적으로 엄마를 돕고, 시호는 무뚝뚝한 초아의 마음을 찌릿하게 하고, 지루할 것 같은 섬 생활이 오히려 초아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한뿌리를 강조하는 초아 엄마의 말처럼 초아는 생전 처음 만난 외할머니에게서 강한 핏줄을 느낀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가족이 있어서 든든하다는 것을 외할머니를 통해 새삼 느낀 것이다. 원래 양귀녀라는 이름이었는데 근래에 양지은으로 개명한 초아 엄마지만 솔섬에서는 역시 귀녀가 더 친근하고 엄마답다. 다락방에서 발견한 양귀녀의 일기장을 보면서 초아는 조금씩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외할머니가 살고 계신 솔섬처럼 이 소설은 특별한 기대없이 읽다가 보물을 만난 기분이다.
청록이 말처럼 '고장난 보물섬'이지만 그래도 좋다. 분명 어딘가에는 보물이 있을거라는 희망이 있으니까. 사실 그 보물은 땅 속에 묻혀 있는 백자도 아니고, 외할아버지가 물려주신 가보도 아니다. 서로의 고장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바로 가족이 아닐까.
왠지 이 책을 읽고나니 가족들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우리 보물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