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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 해냄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장마와 잇달은 태풍으로 우중충한 요즘이다. <오늘 예보>의 'DJ 데블'은 세상에 희망이나 행운, 행복은 없다는듯 괴롭고 슬픈 일들을 예고하는 가공의 인물이다. 진짜 요근래의 수해와 각종 뉴스를 접하다보니 'DJ 데블'이 엄청 신나서 떠들어대고 있을 것만 같아 은근히 화가 난다. 이 소설은 'DJ 데블'의 망원경에 포착된 세 명의 삶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DJ 데블'은 이들 세 명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절망의 끝을 향해 달려갈거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과연 결말은 어떻게 될까?
누군가 내게 "넌 안돼."라고 가차없이 말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 "너희들은 안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경제 위기는 한 인간이 가진 일말의 자존심쯤은 던져버리게 만들 정도로 심각한 것 같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서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도대체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름? 나고단. 만 46세. 이름만큼이나 고단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민주식 짝짓기'라고 하여 여자애들이 남자애를 선택하는 짝짓기에서 키가 제일 작다는 이유로 마지막까지 선택을 받지 못하는 굴욕을 당한 후로 인생은 만만치 않았다. 홀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일한 혈육인 정상이 형은 동생을 버려두고 사라졌다가 몇 년 만에 나타나서 선교사로 캄보디아에 갔다. 세상에 의지할 곳 없는 고단씨는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착실하게 돈을 모으지만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그녀의 배신으로 좌절하고 사업을 벌였다가 빚더미에 앉게 된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일이다.
이름? 이보출. 대박을 꿈꾸다가 빚만 지고, 마누라는 떠나고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누나네 맡겨 놓은 상태다. 현재 그의 직업은 TV 드라마 엑스트라다. 친분이 있는 대수 형에게 엄청난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돈을 빌렸다가 홀랑 날리고 도망다니는 중이다. 지금 그가 바라는 건 엑스트라로 일당을 벌어서 아들과 방 한 칸 얻어 함께 사는 것이다. 물론 대수 형을 피해다녀야겠지만.
이름? 박대수. 한 때 주먹계를 평정했으나 딸아이를 위해서 손을 씻고 정말 착하게 살려고 했는데 퇴직금으로 모은 돈을 보출이란 놈이 홀랑 날려버리고 딸 봉봉이는 골수이형성증후군에 걸려 골수 기증만을 기다리고 있다. 주먹계 동생 김 부장과 함께 보출이를 잡으려고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는 중이다. 보출이를 잡는다고 해서 떼인 돈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 할 일도 없다. 아픈 딸 아이 곁에 있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보출이와의 숨바꼭질을 끝내기 위해 보출이의 아들을 잠시 보호하게 된다.
나고단 씨, 박대수 씨, 이보출 씨의 하루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면 꼭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읽는 내내 세 명의 삶이 너무 찌질해서 마음 아프고 속상했다. 하지만 'DJ 데블'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절망하고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숨쉬고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며 희망이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는 옆에서 해주는 충고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문득 깨닫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도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기 자신이 사랑해주면 되지 않는가.
<오늘예보>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바로 희망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차인표라는 이름 앞에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을만큼 멋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