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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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을 직접 뵌 것은 구리시에서 개최하는 행사 사인회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중단됐다. 연로하셔서 더 이상 사인회를 진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코 앞에서 중단되니 안타까운 마음에 평소라면 엄두도 못냈을 용기를 냈다. 사인은 못 받더라도 악수라도 꼭 해보고 싶어서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해주셨다. 자그마한 체구에 가녀린 손을 꼭 잡으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난생처음 작가님의 손을 잡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올해 별세 소식을 들었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작년에 출간된 박완서 님의 마지막 에세이다. 마지막...... 왠지 마음이 허전해진다. 박완서 님의 작품들은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특히 이 책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마치 친정엄마의 소식을 듣는 느낌이다. 마당을 가꾸는 일, 사람 만나는 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등이 우리의 일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게 신기하다. 작가의 일상은 뭔가 다를 것 같지만 일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남다른 것 같다.

박완서 작가님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뛰어난 작품을 집필하신 것뿐 아니라 마흔이란 나이에 등단했다는 점이다. 가정주부에서 작가의 길을 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닌데 5남매를 잘 키워내면서 작가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여줬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얘길 듣고 역시 작가님답다고 느꼈다. 

80세의 나이, 작가가 아니어도 그즈음의 인생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를 것 같다. 5남매를 키워냈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한 여자로서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자면 한 권의 책으로는 모자랄 듯 싶다. 남편과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존경하는 선배 작가들을 떠나보내면서 얼마나 마음 한켠이 시렸을까. 혼자 유유자적 전원생활을 누리면서도 조급해지는 마음을 추스리며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는 작가님의 마지막 일상을 이 책을 통해 보게 된다. 작가님에게 못 가본 길이란 어쩌면 남편과 아들이 있는 저 세상이 아닐까? 남겨진 가족들은 마음 아프겠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만나셨으니 여전히 행복하실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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