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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트인 과학자 - 데이터 조각 따위는 흥미롭지 않아요. 특히 숫자!
랜디 올슨 지음, 윤용아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특이한 이력의 작가다. 해양생물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영화계로 진출하여 과학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과학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했듯이 '말문 트인 과학자'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며 고루한 과학자들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문득 우리나라의 조경철 박사님이 생각난다. 딱딱하고 어려운 과학을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박사님 이미지보다는 푸근한 할아버지 같았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것이 바로 과학과 대중과의 소통이 아닐까 싶다.
그가 서른여덟 살에 안정된 교수직을 청산하고 할리우드에 있는 영화학과에 입학했을 때의 굴욕담은 매우 인상적이다. 연기를 가르치던 '마귀할멈 같은 여교수'는 그의 나이, 학벌같은 조건은 완전 무시하고 형편없는 연기력에 대해 엄청난 질책을 한다. 평생 과학자로만 살 줄 알았던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는 배운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으니 여교수의 질책이 황당할 뿐이다. 여교수 왈, "...... 이래서 문제라는 거야! 너희 같은 것들은 삶을 연구할 대상으로만 보고 모든 걸 대가리로 해결하려고 한단 말이야! 그걸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희 먹물들은 연기를 하면 안 되는거야! 배우들이 기껏 연기를 하면, 너희는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서 대가리로 생각만 해대다 터진 주둥아리로 말만 지껄이거든!" (16p)
대단한 독설을 듣고 강의실에서 쫓겨나는 굴욕을 겪고나서야 그는 자신의 문제점을 바라보게 된다. 과학자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 '어떻게'가 아닌 '무엇'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감정이 배제된 무미건조한 정보 전달이 되고만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과 영화는 상상력에 기초한다. 천재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상상력이 그 어떤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창의력, 상상력이 결여된 과학은 밋밋하고 규율이 결여된 과학은 위험하다. 과학을 객관적인 부분(연구)과 주관적인 부분(대중과의 의사소통)으로 나눌 때 어느 한 쪽에만 치중하지 말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계가 대중과의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더욱 발전하기 바라는 작가의 열정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과학은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과학자들에게 조금만 더 대중과의 의사소통에 적극적이 되라고 호소한다. 아무리 훌륭한 연구를 한들 아무도 연구 결과를 모른다면 무의미한 연구가 될 수밖에 없다. 일례로 학술대회에 참가한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발표를 꺼리는 경우를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몰두하는 과학자 입장에서는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힘들다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장에 "그런 과학자는 되지 마세요!"라고 조언한다. 이 책만 읽으면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과학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알리기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 랜디 올슨과 같은 과학 해설가 혹은 과학 안내자가 있기에 대중들도 과학과 친밀해질 수 있다. 과학계의 새로운 변화가 널리 확대되어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받는 과학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