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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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순간 제목이 떠오른다.

나사의 회전?

왜 나사의 회전일까?

책을 읽는 동안 제목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분명 급하게 길을 나섰는데 막상 정신을 차려보니 가려던 곳이 어디였는지 모른다는 걸 알게 된 황당함이랄까?

그래서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봤다.

이야기의 처음, 바로 그곳에 답이 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난롯가에 사람들이 모여 소름 끼치는 괴기스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때 더글라스는 이제껏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끔찍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다들 흥미를 보이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이야기가 글로 쓰여 있고 자신의 잠긴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더글라스는 원고의 일부를 '나'라는 인물에게 우편으로 보내고 여러 사람들은 이야기의 시작을 함께 듣는다.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난한 시골 목사의 막내딸로, 원고는 그녀가 직접 쓴 글이다.  그녀는 스무 살 나이에 가정 교사 자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돌볼 어린 남매의 백부와 면접을 하는데 그가 내건 조건은 간단하다. 자신에게 그 어떠한 사항도 일체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즉 자신을 성가시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백부는 젊고 매력적인 독신남이라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재정적 지원은 아끼지 않았지만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는 건 원치 않았던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던 한 부인이 질문을 한다. "원고의 제목이 뭔가요?"  그러자 더글라스는 "제목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 저는 제목을 붙일 수 있어요."

더글라스는 죽음을 앞두고 나머지 원고를 모두 '나'에게 맡긴다. 여기서 '나'란 존재는 이 책을 읽는 우리 모두가 아닐까?

 

나사를 돌려본 적이 있는가? 나사가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잠시 나사라는 실체보다는 나사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나사가 회전을 멈추고 나면 그제서야 나사를 인식하게 된다. 나사의 회전은 나사의 본래 이미지를 잊게 만드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새로운 경험을 의미한다.  

책 속의 '나'가 아닌 현실의 '나'는 이 책에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나사의 회전>은 1898년 작품으로 최초의 심리소설이자 유령소설이라고 한다. 유령이 등장하지만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유령을 바라보는 젊은 가정교사의 심리상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외딴 시골 대저택에서 생활하게 된 그녀는 무척 불안했을 것이다. 다행히 두 아이들은 천사같은 외모와 붙임성있는 성격으로 그녀를 따른다. 모성애적 본능을 깨우기에는 아직 어린 그녀로서는 두 아이에 대한 책임감 이상의 집착이 있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유령을 목격하고 그로스 부인을 통해 유령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예민해진 그녀의 행동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점점 유령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마치 질투심에 불타는 연인의 모습과 흡사해보인다. 왜 그 유령이 사악한 존재이며 아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100 여년 전에는 모자를 쓰지 않는 것도 매우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었다고 하니 지금 기준으로 공감하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시대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이 그 당시에는 얼마나 섬뜩하면서도 독특한 내용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불안한 심리를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결말에 이른다.

 

결국, <나사의 회전>이란 제목 이외의 다른 제목을 생각할 틈이 없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21세기가 아닌 19세기 기준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고딕소설 혹은 공포영화의 원조라는 점에서 대단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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