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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식탁
박금산 지음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식탁이 놓인 공간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곳이다. 밥을 함께 먹는 따뜻한 공간이 '아일랜드'라는 수식이 붙는 순간 너무도 낯설어진다. <아일랜드 식탁>은 불편하고 낯선 이야기다.
젊은 남자 선생님과 열여덟 살의 여제자, 시각장애를 가진 여자,도박하는 남자, 언어장애를 가진 남자가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다. 마치 인간이 지닌 추악한 욕망이 장애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신체적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개인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정신적 장애는 주변의 삶까지 마비시키는 것 같다. 그들의 현재 삶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냥 바라보기가 힘들뿐이다. 인간의 욕망은 칼과 같다. 어떤 형태로 드러내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위협적이다.
강민우는 자신의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린 아녜스를 만난다. 소녀 입장에서는 사랑이었겠지만 스물아홉의 남자에게는 욕망이었다. 그가 꿈꾸는 사랑의 대상은 아녜스의 언니 레지나였다. 하지만 그 사랑 역시 욕망의 또다른 형태인지도 모른다.
김일면은 민우와 같은 학교 선생이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자기의 쾌락만을 챙기는 남자다. 그는 레지나와 만난다. 사랑은 없고 섹스만 있는 만남의 결말은 무엇일까? 사랑으로 포장된 만남은 시작부터 불행의 씨앗이다.
정칠기는 민우의 오랜 친구다.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언어장애가 생겨 말을 못한다. '세키'는 그가 자신을 세상에 표현하는 이름이다. 민우 곁에서 아내처럼 함께 살던 그에게 한 여자가 마음에 들어온다. 레지나. 그리고 민우를 통해 알게된 아녜스. 혼자만의 사랑은 장애라는 장벽을 넘지 못한다.
아녜스와 레지나. 미성년자인 소녀와 시각장애인 여자를 보면 슬프다. 마치 뉴스를 통해 듣는 안좋은 사건의 피해자를 보는 느낌이다. 아무도 그녀들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세상의 약자, 그녀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어둡고 씁쓸한 현실이 소설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아일랜드 식탁>은 끝나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불편하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고개 돌려 외면하고 싶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일부인 것을......한숨을 쉬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