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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걷는 길 ㅣ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한수임 그림 / 실천문학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뒤로는 미운털이 박혔다. 고분고분 말 잘 듣던 아이에서 고집불통으로 바뀐 탓이다.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인데 부모 마음은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아무리 커도 아기처럼 품 안에 두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지라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까지 수긍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문제는 부모 마음은 제자리인데 아이 마음은 커져가니 대화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이와 대화할까?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은 작가인 아빠가 열세 살 아들 상우와 고향인 ‘강원도 바우길’로 불리는 대관령 고갯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다. 작가인 아빠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그려낸 한 편의 책을 출간한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가 좋을 수만은 없다. 그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아빠에게 상우 할아버지의 전화가 온다. 고향집에 한 번 다녀가라고. 상우는 아버지와 함께 대관령 꼭대기에서 할아버지 댁까지 걸어가고 동생 상빈이와 엄마는 차로 먼저 가게 된다.
아빠가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실제 걸어가는 이야기인데 읽으면서 아빠의 비유처럼 우리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걷는 일이 처음에는 쉬워 보이지만 가다가 지칠 때도 있고 급히 서두르다 넘어지기도 한다. 익숙한 집을 떠난다는 것, 그리고 차로만 다니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어린 아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아빠 역시 어릴 적에 많이 걸어 다닌 길이었지만 아들과 함께 걷는 것은 처음이다. 이렇듯 가족 간에도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주변에 아무런 방해 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며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걷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 대화가 부족한 것은 마음의 문제인 듯싶다. 왠지 글을 쓰는 작가 아빠라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대화도 자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는 걸 보면 말이다. 부모의 마음은 늘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주고 싶은데 아이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고 정작 아이가 원할 때는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아빠는 책을 출간한 뒤 아버지에 대한 생각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아들과 걷는 일을 계획한 것 같다.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 하면 반항하고 싶은 것이 아이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함께 같은 길을 가면서 들려주는 아빠의 인생수업은 제법 아이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어리게만 느껴지던 아들이 의젓하게 아빠의 무거운 마음을 이해하고 덜어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기특하다. 그리고 아빠가 걸었던 옛길을 아들이 지금은 아빠와 함께 걷는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 길은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빠까지 힘들게 땀 흘려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아들에게는 얼마나 멋진 경험인가? 물론 아빠도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했을 것이다. 아빠도 어린 시절에는 할아버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아들에게는 새삼 아빠와 공감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아빠에게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천천히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큰 감동을 준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며 출간된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젠 어린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강원도 바우길’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번에 책 출간 기념으로 이순원 작가와 함께 ‘바우길 걷기 여행’ 행사가 있다고 한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어 안타깝다. 당장은 못 가지만 언젠가는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싶다. 그리고 꼭 그 길이 아니어도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부모로서 마음이 든든해지는 좋은 책을 읽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