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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헴펠 연대기
세라 S. 바이넘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내 생애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는 중학교 시절이었다. 사춘기와 맞물린 시기였고 특히 중학교 1학년 시절에 만난 국어선생님은 그러한 예민한 감성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분이셨다. 나이를 짐작할 수는 없지만 제법 나이든 미혼의 여선생님이셨는데 마른 몸매에 유난히 눈빛이 반짝이던 분이셨다. 수업을 10분 남겨놓고 수필이나 소설을 읽어주셨는데 어찌나 잘 읽어주시는지 짧지만 무척이나 달콤한 시간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것이, 물론 선생님은 교실에 있는 모든 학생을 위해 읽어주신 거지만, 이토록 마음까지 와닿는 여운을 준다는 걸 처음 경험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순수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문득 그 선생님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계실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티없이 맑은 소녀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기고 싶기때문이다.
<미스 헴펠 연대기>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중학교 여선생님 미스 헴펠의 일상을 그린 평범하면서도 잔잔한 이야기다. 이미지는 다소 다르지만 미스 헴펠을 보는 순간, 나의 중학교 1학년 시절의 국어선생님이 떠올랐다. 내게는 평생 국어선생님으로 기억될 그 분도 분명 미스 헴펠과 같은 삶이 있었을텐데, 왠지 교실에서 가르치는 모습 이외의 삶을 떠올린다는 게 쉽지 않다. 특히나 중학교 시절의 선생님은 현실적인 선생님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사춘기적 상상과 어우러져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 같다.
미스 헴펠은 젊은 여선생님답게 아이들과 소통할 줄 아는 신세대 스타일이다. 아이들이 쓰는 속어가 일상에서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자연스럽다. 하지만 수업이나 학교생활기록부를 적을 때는 문법과 고급 어휘에 신경쓰며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지니고 있다. 7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은 헴펠 선생님을 잘 따르고 좋아한다. 그러나 인기있는 선생님과 존경받는 선생님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선생님의 모습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었는데 헴펠 선생님은 영화 같은 감동적인 면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선생님의 모습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대단한 가르침을 준다기보다는 예민한 사춘기의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선생님인 것이다. 다만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또래의 막내 여동생은 그 능력이 안 통하는 것 같다. 아마도 여동생 매기에게 언니는 헴펠 선생님이 아닌 비어트리스 언니로 보일테니까.
솔직히 미스 헴펠의 이야기가 엄청난 감동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오래 전 추억으로 덮어두었던 선생님을 떠올리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