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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아도
사토 리에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편견을 깨기 위한 작은 두드림 같다.
실제 주인공, 사토 리에라는 일본 여성은 어릴 적에 뇌수막염을 앓으면서 청력을 잃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다보니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지 못하고 수화도 잘 못해서 그녀가 선택한 소통법은 필담이다. 글로 직접 써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은 누구나 수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수화를 못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상관없지만 긴박한 상황에서는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길을 걸을 때, 차 경적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피할 수도 없고 누군가 자신을 괴롭혀도 항의할 수도 없다.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은 분명 일반인들이 짐작하는 그 이상일 것이다. 남들과 다른 점은 들을 수 없다는 것, 한 가지뿐이지만 세상은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많은 제약을 준다.
그녀의 직업은 호스티스다. 호스티스? 일본에서는 호스티스란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리 환영할 만한 직업은 아니다. 더군다나 청각장애를 가진 여성이 호스티스 일을 한다면 더욱 그렇다. 혹시나 힘없는 장애 여성을 불법적으로 노동착취를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도쿄에서 꽤 유명한 호스티스다. “필담 호스티스” - 손님과 글로써 대화를 주고받으며 접대를 한다. 그녀의 직업관은 확실하다. 호스티스란 마음과 술은 팔아도 몸을 파는 직업은 아니라고. 그래서 더욱 당당하고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하는 것 같다. 손님의 말을 들을 수는 없지만 글을 통해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그녀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슬프거나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위로의 글을, 편안하게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재미있고 유쾌한 글을 써준다. 처음에는 글로 소통한다는 것을 귀찮게 여겼던 손님들도 점점 그녀와의 필담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장애와 직업에 대한 편견을 깨고 순수하게 바라보면 그녀의 삶은 멋지고 당당하다. 남들보다 불편하고 느린 필담이지만 세상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통 방법이 다를 뿐이지 부족하거나 모자라지 않다. 오히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이다. 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 무엇인지를 읽어내고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것을 보면서 감탄하게 된다. 그녀는 소리를 잃었지만 더 큰 마음의 소리를 얻었다. 그녀를 보면서 장애는 극복해야 할 불행이 아니라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남들의 시선, 편견과 맞서서 자신의 삶을 사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무엇 때문에 난 할 수 없어.”라고 말하기 전에 “비록 무엇은 없지만 내가 가진 이것만으로도 난 할 수 있어.”라고 말해보자. 무엇, 이것은 각자 다르겠지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살다보면 A선생님처럼 비양심적으로 비열한 사람을 만날 때도 있지만 반대로 옷가게 사장님처럼 실수를 용서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들리지 않기 때문에 일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필담이라는 특별함으로 남들이 못하는 일을 해내기도 한다. 편견이란 세상을 한 쪽만 보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먼저 편견을 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