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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ㅣ 세계문학의 숲 7
마크 트웨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역시 마크 트웨인이다. 세계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문학적 가치와 대중적 흥미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그럴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에서 보여준 재기발랄한 모험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로우면서도 시대적인 모순을 잘 꼬집어내는 놀라운 이야기다.
영국의 전설적인 아서왕과 미국 코네티컷의 양키가 서로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야기의 시작은 다소 SF적인 요소가 있다. 왜냐하면 19세기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자랐으며 자칭 양키 중의 양키라는 사나이가 뜬끔없이 싸우다가 쓰러져 의식을 잃었는데 깨어나보니 5세기 영국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황당한 시간여행이 가능한지는 묻지 말자. 이 소설은 1889년도 작품이다.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은 어떻게 시간여행을 갈 수 있느냐보다는 시간여행자의 모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양키 사나이가 겪는 일들은 한 편의 영화 같아서 두툼한 책을 단번에 읽게 만든다.
아서왕 시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왕과 귀족, 성직자, 기사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산다. 농민을 포함한 자유민조차 왕과 영주에게 세금으로 대부분을 뺏겨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노예는 더욱 참혹하다. 어떤 오해나 실수로 노예가 되면 평생 일만 하다가 허망하게 죽는다. 반면 왕과 귀족, 기사와 같은 지배층은 모든 권리와 풍요로움을 누린다. 이런 계급사회에 자유로운 미국 시민이 살게 되었으니 한숨이 나올 만하다. 우리 눈에는 번듯한 양복차림인데 5세기 영국인들이 보기에는 꽤나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이었나보다. 신원미상에 요상한 차림새까지 더해지니 양키를 붙잡은 기사 케이 경은 아서왕에게 끌고가 허풍을 떨며 그를 마법에 걸린 괴물 취급을 한다. 감옥에 갇힌 그는 클래런스라는 소년에게서 자신이 다음날 화형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위기에 처한 그는 문득 다음날 일식 현상이 벌어진다는 걸 알고 마법사 멀린처럼 마법사 흉내를 내어 살아난다. 이 부분에서 느낀 점은 양키 사나이의 박식함에 대한 감탄이다. 그는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마법사 흉내를 멋지게 해내고 아서왕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원래 그의 직업은 무기를 비롯한 온갖 기계를 만드는 공장의 수석반장이었기 때문에 그가 만들어낸 물건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놀라운 발명품이 된다. 다만 그의 놀라운 발명품과 교육시설은 극비리에 진행된다. 또한 아서왕과 함께 평민으로 위장한 채 여행하면서 계급차별과 인권유린 등의 정치,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면서 개혁을 꿈꾸게 된다. 과연 그는 영국의 개혁을 이루었을까? 물론 아니다. 영국 역사상 5세기에 벌어진 혁명은 없었으니까. 마치 우리의 홍길동이나 허생이 꿈꾸던 이상향, 유토피아와 흡사하다. 한 사람의 영웅이 시대 전체의 흐름을 뒤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순되고 불합리한 상황마저도 일상이 되어버리면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성직자나 소수의 지배층을 제외하고는 문맹이었던 시대였으니 다수의 사람들은 무지한 약자로서 끌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인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민주자유사회란 지금 시대에도 힘든데 하물며 5세기 왕권중심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코네티컷 양키의 5세기 모험은 멋진 도전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볼 때, "만약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에서는 시간여행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졌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것이 이 작품만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역사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역사의 한 편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환상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