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흔 개의 봄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김기협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월
평점 :
아흔 살 어머니를 간병하는 예순 아들의 2년간의 기록이다.
인자하게 미소 짓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니 저절로 나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똑같이 할머니 소리를 듣지만 아직은 아줌마로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리는 나의 어머니도 언젠가는 아흔 살이 되시겠지.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책표지에 실린 할머니의 미소 때문이다. 할머니의 셋째 아들(이 책의 저자 김기협님)이 놀라워하는 이남덕 여사님의 매력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절에 계시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쓰러지시면서 셋째 아들의 간병이 시작된다. 어른들 말씀에 가장 못난 자식, 속 썩이던 자식이 나중에 효도한다고, 본인 생각에 불효자였던 셋째 아들이 어머니가 아프시니 하루아침에 든든한 보호자 노릇을 하며 시병일기를 쓴 것이다. 원래는 미국에 사는 큰형에게 위중했던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되는 상황을 알리려고 쓴 글을 메일로도 보내고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것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책을 통해 공개한다는 게 본인에게는 굉장히 쑥스러운 일이겠으나 독자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본인은 극구 자신은 효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지나친 겸손이다. 물론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에는 효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년간 어머니에게 쏟은 정성을 보면 그 마음이 효심 그 자체란 걸 알 수 있다.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는 거의 일방적일 때가 많다. 주로 어머니가 주는 사랑을 당연하게 받는 것이 자식이고 어머니가 언제까지나 곁에 계실 거라고 착각하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 자식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2년간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모셨다고 해서 어머니가 주신 사랑과 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요즘 세상에 매일 병문안을 가고 그 내용을 기록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하실 적에는 소원했던 모자 관계가 간병을 하는 동안 점차 친밀해진 것을 보면 효도란 부모님과 자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의지했던 든든한 맏아들은 미국에 살다보니 사치품이요, 모든 면에서 어머니가 사랑했던 둘째 아들은 자주 볼 수 없어서 기호품이요, 늘 마음이 맞지 않아 겉돌던 셋째 아들은 어느새 필수품이 된 것도 2년간 간병하며 얻은 보람이다. 그러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 연락도 뜸한 자식들(나를 포함하여) 입장에서는 반성할 일이다.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는 덜하지만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시면 얼마나 외롭고 서글프시겠는가. 그냥 몸만 아프셔도 마음이 아픈데 정신마저 온전치 못한 경우는 가족들도 고통스럽다. 처음 쓰러지셨을 때 병원 의료진이 보여준 태도와 치료에 흥분하고 분노했던 내용을 단 몇 줄로 간추린 것을 보면 그 당시에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느껴진다. 다행히 그 뒤에 요양병원, 요양원에서는 좋은 의료진과 간병인을 만나 점차 호전되신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이 매일 문병을 오니 더욱 극진한 대접을 받으셨고 그 덕분에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남덕 여사님만의 매력이 주변 사람들을 팬으로 만든 것 같다. 호탕한 기질과 재미난 입담이 더해져서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재주를 지니신 것 같다. 오랜 세월 쌓아온 인맥과 입원 생활을 하며 새롭게 형성된 인간관계까지 능숙하게 관리하시는 걸 보면 참 대단한 분이다. 정말 의도하신 건지 아픈 중에 드러난 본능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사교적이고 유머감각이 넘치신다. 아들 입장에서도 어머니가 아프시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새로운 면을 발견한 셈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 모습을 사랑하게 된 아들의 심정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어머니가 주신 사랑도 셋째 아들 입장에서는 다소 삐딱하게 받아들여서 오해와 갈등이 생긴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고, 간혹 더 예뻐하는 손가락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느 손가락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부모의 마음은 열 손가락 전부를 소중하게 품는다. 철이 든다는 건 그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게 되는 순간인 것 같다. 나 역시 셋째라서 늘 뭔가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내 자신이 세 아이의 부모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은 한결 같지만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식의 입장이 제각각인 것이다. 그래서 자식이 여럿이면 각각의 몫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떤 몫을 할까? 사치품, 기호품, 필수품 중에서 단연 필수품이고 싶다. 태어난 순서는 셋째지만 부모님에 대한 사랑만큼은 첫째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