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혼자 올 수 있니
이석주 사진, 강성은 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하얗게 눈 내린 풍경을 가만히 본다. 온통 하얗게 변한 세상이 아름답다. 하지만 쌓인 눈이 녹으면서 질퍽거리는 찻길, 사람들의 발길에 얼룩진 눈길을 보면서 눈의 마법이 끝났음을 안다.

<너 혼자 올 수 있니>는 사진 에세이다. 사진작가 이석주, 그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을 홋카이도 여행을 하며 눈(雪) 사진전을 준비하다가 2010년 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마치 봄빛에 녹아버린 눈처럼 사라진 것이다. 사진과 함께 실린 글은 눈 내리는 풍경을 좋아하는 강성은 작가의 언어가 사진과 만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눈 내리는 겨울이 배경이다. 아름답다고 하기엔 쓸쓸하고 조금은 슬퍼 보인다. 하얀 형광등 불빛, 그 아래 놓인 알약들……. 그는 머나먼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미리 여행을 떠난 것 같다. 어찌 보면 우리들은 모두 지구별에 잠시 놀러온 여행자들인지도 모른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그래서 여행자란 걸 잊어버린 사람들.

눈이 많이 온다는 훗카이도로 향한 그의 발길을 따라서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텅 빈 차 안, 눈 덮인 마을, 눈 위에 놓인 하얀 꽃다발까지 그는 조용히 내린 눈처럼 차분하게 세상을 본다. 이 사진 곁에 쓰인 글들은 사랑과 상실을 이야기한다. 사진을 찍던 그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바라본 세상은 여기 있다. 왠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사람이 그립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떠난다는 건 그리움을 남기는가보다.

너 혼자 올 수 있니?

너 혼자.

그는 수많은 질문들의 답을 찾았을까? 혼자 마지막 겨울을 보내면서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지인에게 남긴 메모처럼, ‘사진은 빛을 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비워내는 작업’이라고, 그는 마음까지 비워내고 떠났나보다. 그는 떠나고, 남겨진 사진 속에는 여운이 느껴진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느낌 그대로 담아낸 것 같다.

겨울은 혼자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겨울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건 외로움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조용히 눈 내린 풍경을 바라본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낯설 만큼. 삶이라는 여행은 혼자라는 걸 기억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유난히 겨울이 싫었던 내게 흰 눈의 마법을 부린 것 같다. 에필로그에 ‘사라졌으나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 존재하지만 침묵하는 것들’이란 표현이 나온다. 존재하는 것들만 바라보며 살던 내게 이 책은 사라졌으나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과 침묵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언젠가 사라져도 존재하는 존재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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