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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도둑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그림자를 훔칠 수 있다고? 남의 그림자를 가져다가 뭘 하려고?
제목만 보고도 호기심이 생기는 책이다. 다소 동화적인 느낌을 풍긴다. 역시나 빼빼 마르고 안경 낀 소년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역시나'라는 표현으로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는 보이는 것만 보면 정말 특별한 것을 놓치고 만다. 평범해 보이는 소년의 특별한 능력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신비로운 매력에 푹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소년의 엄마처럼 그저 상상력이 남다르게 뛰어난, 내성적인 아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전학 첫날부터 긴장한 모습이 왠지 안쓰러웠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누구나 혼자 감당하기 두려운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부모님께는 말하기 싫고 혼자서는 버거운 고민들 말이다. 대부분 학교에서 겪는 친구문제거나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개인적인 일들이 고민거리가 된다. 소년에게는 두 가지 경우가 다 해당된다. 전학 첫 날부터 마르케스라는 깡패 같은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첫 눈에 반한 엘리자베스를 마르케스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억울하게도 선생님은 그런 소년을 야단치고 낙엽 치우는 벌까지 내린다. 운동장 낙엽을 치우면서 알게 된 학교 관리인 이브 아저씨는 소년에게 뭔가 특별함을 느낀다. 소년 역시 이브 아저씨의 그림자를 통해 내면의 슬픈 상처를 발견하고 도우려 한다. 소년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란 누군가와 그림자가 겹치는 순간 그 사람의 그림자가 따라와 원래 주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것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소년은 그림자 도둑이 아니다. 그림자들이 소년을 좋아해서 쫓아다니는 것이다. 왜? 그건 소년이 그림자가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주인의 뒤편에서 묵묵히 자리 잡아야 하는 그림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니 굉장히 신선하고 놀라운 발견이다. 어쩌면 우리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진실을 그림자의 목소리로 들려주는지도 모른다.
"네가 누군가의 그림자를 뺏어올 때마다 그 사람의 인생을 비춰줄 수 있는 한줄기 빛을 찾도록 해. 그들에게 숨겨져 있던 추억의 한 부분, 그걸 찾아달라는 거야. 그게 우리가 바라는 바야."
"우리라니?"
"그림자들."
그림자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넌 진짜 내 그림자야?"
나는 그림자에게 물었다.
"네 그림자, 이브의 그림자, 뤼크 혹은 마르케스의 그림자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음...... 내가 그림자 대표라고 해두자. 반장 같은 것 말이야."
(103p)
소년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다. 전학 온지 얼마 안되어 아빠가 떠난 일, 그 때문에 엄마는 절망에 빠졌고 소년도 충격을 받은 일. 그리고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던 아빠에 대한 그리움, 서운함 등등. 자신의 상처도 그림자 덕분에 조금씩 아물어가고 소년은 어느덧 어른이 된다. 소년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숨기며 살아간다. 가능한 누군가의 그림자를 훔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 누가 그런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대신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의 길을 가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던 소년이 육체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뭔가 그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마음의 짐이 남아 있다. 가장 친한 친구 뤼크, 사랑과 우정 사이에 있는 여자친구 소피,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 아빠, 어린 시절 바닷가 등대에서 만났던 소울메이트 클레아. 어른이 되면서 잊고 있었던 그림자를 떠올리면서 그는 인생의 한줄기 빛을 찾아 간다.
그림자가 지닌 심오한 의미를 <그림자 도둑>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됐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 깊이 묻어둔 추억이 있다. 끄집어내기 두려울 만큼 아프고 괴로운 추억일지라도 용기를 내어 마주 보면 진실이 보인다는 걸. 우리에게는 소년과 같은 특별한 능력은 없으나 뜨거운 사랑과 용기가 있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에게 그림자 도둑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