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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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지루했던 과목이 국사였다. 역사 이야기는 흥미로운데 우리 역사를 배우는 수업 시간은 지루했다. 연도 순으로 나열된 사건과 인물을 외우기만 했으니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역사 속 인물과 동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 소설은 먼지로 뒤덮인 과거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서 생생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작업 같다. 특히 조정래 작가님의 <대장경>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역사 속에 묻혀졌던 민초들의 삶이 눈 앞에 펼쳐진 듯 그려져 시대의 아픔까지 느낄 수 있었다.

<대장경>은 고려 시대 고종19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대구 부인사에 보존 중이던 초조대장경이 불타면서 그 이야기는 시작된다. 혼란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소실된 대장경을 다시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재조대장경, 바로 지금 해인사에 보존된 팔만대장경인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머리로 이해하지만 소설로 읽는 역사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대장경이 만들어질 당시의 상황은 몽골의 침략과 무능력한 조정으로 인해 민초들이 온갖 시련을 겪을 때였다. 그런데도 대장경을 만든 것은 민초들의 힘이었다. 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장경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 속에는 시대를 이끈 왕과 영웅만이 등장하지만 역사의 주체는 그들이 아니었다. 대장경은 단순히 목판에 새겨진 불경이 아니라 민초들의 혼이 담긴 역사의 증거였다. 조정래 작가님을 통해 새롭게 살아난 <대장경>을 읽으면서 '어떻게 그 옛날에 이토록 훌륭한 경판을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한 순간에 풀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경판을 만들고자 승려와 같은 삶을 자청했다. 아무리 오늘날의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인간의 숭고한 정신으로 탄생한 대장경을 따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고려 시대 고종을 떠올리면 최씨 일가의 무단정치와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쇠락한 역사만을 보았는데 대장경을 통해 민족의 한(恨)과 더불어 기상을 느꼈다. 나라가 어려워도 정신만 바로 서면 희망은 있다.

대장경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근필이라는 목수다. 비단 이 한 사람만의 희생은 아니었지만 그가 보여준 열정적인 모습은 나라를 구한 영웅 못지 않은 장중함이 느껴졌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이 어떤 정신으로 사느냐는 평범한 목수마저 위대한 인물로 만드는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인물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은 평범한 행복과 개인의 이득을 먼저 생각해서일 것이다. 영혼을 불사르는 그를 통해 살아있는 부처의 모습,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을 보았다. 어렵고 힘든 시대에 태어나 이 땅을 지키고자 온몸을 바쳤던 민초들의 이야기, <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혼(魂)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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