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달한 인생
지현곤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한 때 여행자를 부러워 한 적이 있다.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다니는 그들을 보면 왠지 한 곳에 붙박혀 사는 내 자신이 꼼짝 못하는 나무처럼 느껴졌다. 자유로운 몸을 지녔으나 번잡스런 마음이 붙잡으니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먼 나라 얘기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여행은 하나의 구실이었던 것 같다.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부러웠던 것 같다.
카투니스트 지현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를 몰랐다. 만약 그를 모른채 카툰을 먼저 봤더라면 그림 한 장 속에 펼쳐지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력에 감탄하며 작가의 모습을 나름대로 멋지게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척추결핵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되어 40여 년 동안 자신의 두 평 반 방에서 벗어난 적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유일한 취미였던 그림 그리기로 잡지에 투고하던 것이 점점 수준 높은 작품을 완성하여 각종 대회에 수상하는 전문가가 된 것이다. 쉽게 거동할 수 없는 불편함 때문에 한 번도 수상하는 자리에 가 본 적이 없는 그를 놓고 모르는 이들은 오해를 했던 모양이다. 사실 그의 장애를 알게 된 이후에는 오히려 그의 카툰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래저래 힘들었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더욱 세밀하게 표현해내려고 애썼고, 바로 그러한 노력이 지현곤만의 카툰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그는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달을 사랑하는 남자다. 북향인 탓에 매일 볼 수도 없는 달을 연인마냥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이 애잔하다. 매일 새롭게 모습을 바꾸는 달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작가를 보면서 문득 동질감이 느껴진다.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건 우리는 늘 자유와 변화를 꿈꾸며 사는 것 같다. 그가 비록 평범한 다른 이들처럼 활동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몫을 다하며 꿈을 향해 열심히 살아간다는 건 똑같다.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한 탓에 선뜻 자신을 드러내기 어색해도 그는 카툰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과 교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갖고 산다는 건 너무나 고달픈 인생임을 알기에 그의 낯가림이 놀랍지는 않다. 그의 카툰 속에는 보편적인 감성을 특별하게 표현해내는 힘이 있다. 마치 자신의 일상처럼 대단한 반전이나 클라이맥스는 없어도 감동이 있다.
지현곤이라는 사람과 카툰 이야기를 읽어가며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특별한 인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굳이 먼 세상을 여행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을 살아가는 여행자가 아닐까 싶다. 더 많은 곳을 다녀야만 멋진 여행자가 아니라 한 곳에 머물러도 늘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멋진 여행자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자가 느끼는 자유와 깊은 통찰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지현곤 님의 달달한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