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정원 - 어느 미술사가의 그림 에세이
정석범 지음 / 루비박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예술을 즐기는 일이 그저 고상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이제껏 살면서 예술 전시회를 가 본 경험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일부러 시간을 낼 정도의 관심도 없었고 왠지 전시회에 가면 혼자 이방인이 될 것 같은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훌륭한 명화를 찾아보게 되고 좋은 전시회가 없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자식에게는 무엇이든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부모의 욕심때문일 것이다. 다만 예술적 지식이 얕다보니 그냥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은 현실 속에 뿌리내린 우리의 자화상이란 걸 알게 됐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느끼는 감동이었다. <어느 미술사가의 그림 에세이>는 마치 명화에 관한 작품 설명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곁들여져 친밀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네덜란드 화가 다비트 바일리의 작품 <바니타스 상징이 있는 자화상>을 보면 그림 속의 젊은 화가가 자신의 늙은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들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촛대, 모래시계, 유리잔, 꽃, 해골 등의 소품이 놓여 있다. 바니타스 초상을 그릴 당시 67세였던 화가는 자신의 자화상을 젊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오히려 그림 속 그림의 자화상에는 현재 자신의 늙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육체가 늙어간다는 건 우리가 세월을 실감하는 증거이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실체이다. 이 위대한 작품 한 점으로 무명 화가였던 그의 이름이 미술사에 남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작품을 보면서 어린 시절, 월남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낯설음을 통해 인생 무상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게는 화가 다비트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그림 속 젊은이는 아들이고, 들고 있는 그림 속 주인공이 화가 자신이 아닐까 라는 상상을 했다. 저자는 비록 전쟁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모습이 이전과 너무나 달라 당황했지만 그러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사랑했다. 과거의 기억들은 아프고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재를 더욱 단단하게 일으켜주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준 마음의 정원이었다. 예술은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씨앗이며 그 씨앗을 키워내는 일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저자는 우리의 삶 자체가 진정한 예술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떠한 정원을 남겨줄 것인지, 숙제를 받은 것 같다.

<아버지의 정원>은 명화를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공감하며 감동하도록 이끌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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