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전 : 악몽일기
박승예 글.그림 / 책나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1. 왜 이 책을 읽게 됐는가?

괴물과 악몽에 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딱 봐도 괴상망측한 그림이 뭔가 흥미를 자극한다.

 

2. 책에 관한 첫인상?

생각보다 책 사이즈가 작고 얇다. 살짝 책장을 넘겨보니 그림과 글이 반반씩, 마치 전시회 판플렛 느낌이 든다.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만한 책인 것 같다.

 

3. 다 읽은 소감?

반전의 묘미를 주는 책이다. 누구나 느끼는 반전이 아니라 순전히 혼자 느낀 반전에 헛웃음이 나온다.

뭐야? 책을 읽으면서 악몽이라도 꾼 건가?

그래서 두 번 읽었다. 다시 확인하려고. 특히 작가의 이력은 꼼꼼히 읽을 것. 공포가 예술로 바뀐다는 것.

영화를 봐도 그렇고 소설책을 봐도, 사건 속 반전은 재미의 핵심이다. 의도된 교묘한 속임수랄까. 만약 마술사가 펼치는 화려한 공연처럼 속으면서도 재미있고 즐거운 반전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그러나 반전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반전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상상력의 한계을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뒤늦은 깨달음이며 놀라움이다.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이 책은 전혀 반전을 의도하지 않은 순수하며 정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며 있는 그대로다. 다만 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상상한 것은 나의 착각 탓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실수때문이다. 아마 잠깐 더위를 먹었던 모양이다.

맨 처음 책을 넘기니 작가의 사진이 보였다. 흑백사진인데다 딱 이마까지만 보이는 얼굴, 검은색 상의만 보고 나의 뇌는 '남자'라고 인식했다. 작가의 이름이야 여성스러운 남성작가도 많기때문에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의문을 가진 것은 "여성작가 날개 달기 프로젝트'의 1기 선정 작가로 기획개인전을 열었다는 이력을 보면서 왜 남성 작가를 선정했을까 라는 점이었다. 지극히 정상적인 뇌를 가동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여성작가라고 판단했을 대목에서 나의 뇌는 처음의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한 작가의 사진이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된 것이다. 작가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이 엄청난 착각을 확인한 것은 2008년 10월 27일 새벽 4시 반에 꾼 악몽에서였다. 그 전에 오빠 얘기가 등장할 때도 각각의 악몽마다 주인공이 바뀐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꿈속에 등장한 친구는 여고 동창인데 갑자기 과부가 되어 나타나 자신의 애 아버지가 되어달라고 말한다. 급기야 결혼식까지 진행된다. '내가 왜? 내가 왜? 도대체 왜? 자신은 분명 여자인데 같은 여자인 동창이 느닷없이 남자 취급을 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서 두 가지 착각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정말 작가가 꾼 악몽을 적은 책이며 작가는 '여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미술을 전공한 예술가이며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 같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였다. 아니, 박승예 작가의 작품집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빨간색이 파란색으로 바뀐 느낌이다.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한 마디 하자면, 괜히 제목만 보고 착각하지 마시라. 박승예 작가는 소설가가 아니라 미술작가다. 그녀가 그린 작품은 창작물이지만 그녀가 쓴 글은 실제 일기였다. 그림을 보면서 작가의 얼굴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녀의 악몽이 작품으로 재탄생했음을 알게 됐다. 꿈을 꾸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며 악몽이란 꿈 속 반전이다. 꿈 속의 나는 형체가 자유자재로 바뀌고, 등장하는 존재들도 갑작스런 변신이나 이상한 행동들로 공포와 충격을 준다. 악몽을 꾼다는 건 현재의 불안과 걱정의 표출일 것이다. 그래서 꿈을 꾸는 나는 당황하고 놀라며 공포에 몸부림치다가 잠을 깨고 만다. 현실에서 '나'라고 인식하는 모습은 보여지는 껍데기인지도 모르겠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가끔 악몽에 등장하는 괴물이 진짜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는 항상 '나' 자신에 대한 고민 속에 살아가며 무의식은 다양한 악몽을 통해 숨겨진 '나'를 끄집어낸다. 그녀가 보여준 괴물전은 나를 향한 고뇌, 몸부림의 결정체가 아닐까?  괴물은 '나'를 공포에 떨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현실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괴물전 악몽일기>를 보면서 멋진 전시회를 다녀온 것 같아 흐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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