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머리일까?
차무진 지음 / 끌레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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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표지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탄생한 허구의 이야기지만 꽤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읽는 내내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닫는 기회였다. 단순히 역사 미스터리라기보다는 철저하게 우리를 짓밟으려했던 일본의 만행을 밝혀내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이야기는 현재로부터 시작하여 1923년 과거로 돌아간다. 경주 왕릉 마을에는 김유신의 묘를 지키는 봉우당과 김인문의 묘를 지키는 유곡채라는 두 가문이 살고 있다. 주인공 법민은  유곡채의 둘째 아들로 일본 유학을 갔다가 징집을 피해서 일본인 친구 겐지와 경주로 돌아온다.  겐지의 사촌 유키오가 조선총독부 경주박물관 유물연대조사원으로 겐지를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즈음 의문의 관과 머리 미라가 발견되고 의문의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머리 미라는 과연 김유신의 머리일까?

실제로 경주 선도산에 위치한 각간묘의 주인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둘째 아들 김인문인지, 아니면 김유신인지 아직 논란이 많다. 정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수많은 추측만 무성한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점은 일제 시대 때 역사연구라는 명목하에 우리의 역사가 훼손되고 왜곡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이야기만 하더라도 유곡채의 자손인 법민은 방관자처럼 행동한다. 오히려 일본인 친구 겐지가 실마리를 풀어가는 역할을 한다. 법민을 둘러싼 가족의 비밀과 머리 미라의 정체는 서서히 밝혀지고 모든 이야기는 [삼국유사]에서 비롯된 광기어린 유희였음이 드러난다. 마지막의 반전은 크게 놀랍지는 않지만 씁쓸하다. '결국 그거였구나.'라는 허탈함이 남는다.

[삼국유사]에 적힌 김유신의 관한 기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가 된다. 역사는 승자를 위한 기록이라고 하지 않던가. 왜곡되고 감춰질 수도 있는 역사적 진실은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논란의 중심이 된 김유신에 관한 의문점을 기가막힌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 ......김유신은 노쇠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어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되찾은 후, 673년 음력 7월 병세가 악화되어 병문안을 온 문무왕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죽었다. 이때 그의 나이 79살이었다. 문무왕은 김유신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며 비단 1천 필과 조 2천 석을 내려 장례식에 쓰게 했으며, 군악의 고취수 100명을 보내주었다. 또한 금산원에 장사를 지내게 하고 신하들에게 명하여 비를 세워 공명을 기록하게 했으며, 그곳에 민호를 정착시켜 김유신의 무덤을 지키게 했다. 835년에는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 위키백과 참조

위와 같은 역사적 기록만 본다면 김유신의 죽음은 전혀 의문점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왕을 능가할만큼 강력했다. 그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대역죄인으로 죽임을 당하고 머리가 잘릴지언정 그를 죄인이라 기록할 수 있었을까?

머리 미라를 둘러싼 역사의 비밀은 봉우당과 유곡채 가문으로 이어져 살인마의 유희에 의해서 농락당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차라리 이집트 파라오 미라의 저주처럼 머리 미라도 그것을 훼손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렸다면 속이 시원했을 것이다. 

역사 미스터리에서 역사에 대한 반성이 되는 유익한 책이다. 우리의 찬란한 역사가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던 아픈 시기가 있었다면 이제는 되살려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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