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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작년인가 인터파크에서 연재되는 <강남몽>을 우연히 읽게 됐다. 인터넷 연재소설은 처음이라서 신기한 마음에 매일 출석하며 읽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중간에 맥이 끊기고 말았다. 한국 사람은 情으로 산다더니 두어 달 情든 소설인지라 출간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도대체 박선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제목에 들어간 夢(몽)이 처음에는 낯설더니 마지막 장을 읽고나서야 고개가 끄떡여진다. 한국의 현대사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파란만장한 등장인물들의 삶이 결국에는 다 부질없는 꿈이었더라는......그러나 단순히 그렇게 결말을 맺기에는 뭔가 허전함이 남는다. '한강의 기적', '강남 형성사', '광복 반세기', '격변의 정치사' 등등 우리의 현대사는 그야말로 신기루 같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냥 한낱 꿈이라면 좋았을 것을.......
뜨겁고도 슬픈 꿈, 우리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아마도 이 책을 인터파크 연재 소설로 만난 이들은 처음에 등장한 박선녀에게 남다른 관심을 가졌을 것 같다. 이름부터 남다른 그녀에게서 뭔가 특별한 인생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매일 연재되는 소설의 매력은 식물을 키우듯 천천히 조금씩 그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일 것 같다. 그래서 전체적인 흐름보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연연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한 권의 책으로 끊김없이 읽다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다. 누굴 딱히 주인공이라고 눈여겨 볼 필요없이 광복 이후의 시대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한 개인의 삶은 미약하게 느껴질 정도다. 제아무리 잘난 놈, 가진 놈, 힘센 놈도 역사를 거스르거나 바꾸어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1995년 6월 29일, 삼품백화점 붕괴 사건이 있던 날, 나는 어느 두메산골 마을에 있었다. 대학 써클에서 농촌봉사활동 중이라 전혀 텔레비전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우연히 이장님 댁에서 식사하던 중 이 소식을 접했다. 모두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어떻게 백화점이 무너질 수 있지? 겨우 며칠 서울을 떠나있었는데 마치 한 순간에 몇 십 년이 지난 것처럼 세상이 변해버린 느낌이었다. 화려한 강남의 한복판, 눈부신 경제 개발의 성과물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진지 불과 8개월 밖에 되지 않은 때라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무도 막지 못한 재앙의 원인은 인재로 밝혀졌고 무리한 개발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그냥 그 뿐이었다. 세월과 함께 서서히 잊혀졌다.
강남몽은 우리에게 잊혀졌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일제 시대를 거쳐 광복 이후, 나라를 찾았으나 바로 세우지 못한 역사적 오점이 어떻게 현재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담담하게 보여준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역사는 흐르고 우리의 삶도 흘러가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무너진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은 단순한 사건이 아닌 역사적 경고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저 끔찍한 악몽처럼 떨쳐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신기루 같은 경제 성장이 아닌 굳건한 정신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시기인 것 같다. 무엇보다 올바른 역사관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