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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제국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기록한 우리 시대 음식열전!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0년 5월
평점 :
이토록 맛깔스러운 글이 또 있을까?
20년 가까이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저자는 훌륭한 미각뿐 아니라 예리한 감성을 지닌 것 같다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순전히 글로써 표현해내고 있다. 누구나 먹어봤을 음식에 대해서 미묘한 맛의 개념을 설명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가답다. 무엇보다도 글을 통해 미각을 깨우는 그의 능력에 감탄한다.
미식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꼭 읽어야 할 교본일 것이요,
식(食)이 생존을 넘어서 삶의 향유임을 깨달은 이들에게는 공감의 마당이 될 것이다.
미각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닌 듯 싶다. 음식의 재료가 어떠한 맛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 재료를 배합하여 만든 요리의 맛을 아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재료의 본래 맛을 모른다면 아무리 많은 음식을 먹은들 그 맛을 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음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바로 물과 소금일 것이다. 물맛이 좋고 적절한 소금의 양을 조절해야 맛난 음식이 만들어진다. 어떤 물이 좋은 물인가? 저자는 좋은 물이란 맑고 가벼우며 부드럽고 잡 내 없는 물이라고 말한다. 혀로 느껴지는 맛도 중요하지만 좋은 물은 정신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아름다운 물이 좋은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까지 맑게 해준다고.
우리 어린 시절에는 항상 수돗물을 끓여서 보리차를 만들어 먹었다. 그래서 물맛은 보리차 맛이 전부인 줄 알았고 생수는 밍밍해서 도저히 마시질 못했다. 물론 지금은 어떤 물이든 마실 수 있는 물이면 가리질 않지만 그 때는 물이 그냥 물맛이면 마시지 못할 정도로 편식이 심했던 것 같다. 어쩌면 물맛을 제대로 모르다 보니 익숙한 맛만 찾게 되어 편식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맨날 먹던 음식만 먹어서야 되겠는가? 요즘은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되도록이면 다양한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우스갯 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유는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던지 마지막에 물을 마시면서 "아~ 잘 먹었다. 물이 제일 맛있네."라고 하니까.
평소 요리를 할 때 화학 조미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소금이다. 좋은 천일염을 쓰면 적당히 짠 맛을 내면서 뒷맛이 달다. 구체적으로 소금 맛을 분류할 정도의 수준은 못 되지만 맛좋은 소금 맛은 알 것 같다.
물, 소금 이외에도 된장, 식초, 고추, 설탕, 청국장, 김치찌개 등 음식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부분 우리의 둔해진 미각을 돌아보게 만드는 예리한 지적이다. 아귀 간이 빠진 아귀 요리, 삼겹살구이의 핵심은 돼지고기 자체의 맛이 아닌 된장 쌈이란 것, 캐러멜 시럽으로 범벅된 돼지갈비, 온갖 나물을 데치고 볶아서 결국에는 고추장으로 모든 맛을 평정시킨 비빔밥, 떡이 아닌 고추장과 설탕이 주인공이 된 떡볶이, 튀김 요리로 변질된 돈가스, 달달하게 변한 자장면 등등......
결국 우리의 입맛은 달고 자극적인 조미료에 익숙해져서 무엇이 정말 맛있는 음식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대개 맛집으로 소개된 메뉴를 보면 굉장히 매운 요리인 경우가 많다. 한국 고유의 다양한 맛은 사라지고 그저 맵고 짜고 단 음식만 인기를 끄는 것 같다. 이러한 미각의 변화는 외식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손수 요리하여 만든 음식과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은 질적으로 다르다. 음식점에서 아무리 고급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고 해도 한 가지가 빠져있다. 바로 '사랑'이다.
"......뭔가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에게 사랑 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행이다.
끼니로서의 음식,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 서글프고 처연한.
결국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은, 먹고자 하는 것은, 젖과 같은 사랑이다." 223p
<미각의 제국>은 음식에 대한 탐구이며, 우리 삶에 대한 성찰이다.
진정한 미식가란 뛰어난 미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맛있는 음식은 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