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전용복 -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전용복 지음 / 시공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만났다.  기쁘면서 부끄러웠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전용복'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했다.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라는 소개글을 보고서 궁금한 마음에 읽게 됐다.

도대체 어떤 예술가일까?  책 표지가 꽤 강렬하다. 암흑처럼 까만 바탕에 미세하게 반짝거림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인 전용복님의 사진이 보인다. 얼굴보다는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손, 닳아서 짧아진 듯 까맣게 물든 손톱이 인상적이다. 축구선수나 발레리나의 발처럼 예술가의 손은 아름답진 않지만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거쳐 가구 회사에서 영업을 하던 사람이 옻칠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밥 벌어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예술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꿈을 향한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옻칠에 매혹되어 옻칠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지극하고 간절하다. 그 덕분이었는지 일본의 국보급 작품이 전시된 메구로가조엔(전통을 지닌 연회장)의 옻칠 작품을 복원하는 일을 맡게 된다. 정말 대단한 성과라 할만하다. 일본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면 굉장히 파격적인 결정같지만 전용복님의 피나는 노력을 알게 되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는 옻칠 복원 작업을 맡기도 전에  2년여간 일본어를 배우고 옻칠의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며 철저한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 전문가들은 어렵다고 한 일을 그가 해낸 것이다.

"분명히 얘기하지만 나는 할 수 있소. 백 번 물어봐도 내 대답은 똑같을 거요. 불가능하다고 한 사람들과 내가 무엇이 다른 줄 압니까?  그들은 목숨을 걸지 않았고 나는 목숨을 걸었다는 점이오. 아시겠소?"  109p

참으로 치열한 열정이다. 하나뿐인 목숨을 걸 만큼 옻칠에 대한 그의 열정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듯하다. 단순히 메구로가조엔의 옻칠 작품을 복원해서가 아니라 옻칠에 관한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그의 모습에 감탄하는 것이다. 결국 그는 100명이 해도 힘들 일을 고작 30명이라는 한국의 장인들과 함께, 메구로가조엔을 재탄생시켰다.

1991년 11월 13일.

일본에서 제정한 '옻칠의 날'이자 메구로가조엔 개관식 날이기도 하다. 새로운 메구로가조엔의 미술품은 한국인의 손으로 완성된 것이다. 혼신을 다한 복원 작업을 한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메구로가조엔의 미술품을 복원하기로 결정한 일본인들의 의지 또한 대단하다. 진정으로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예술가들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옻칠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을 뿐더러 예술 문화에 대한 사랑도 부족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전용복님은 그 뒤에도 옻칠 연구를 계속하여 옻칠 악기를 제작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 그리고 우리나라 옻칠 문화에 기여하고자 모든 연구자료를 국립과학기술원 KIST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정부는 '놀랄 만한 연구결과'라고 평가만 했지, 그 자료를 묵살했다. 또한 옻칠 악기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안 어떤 사람이 먼저 특허를 내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부끄러운 일이다. 어찌하여 훌륭한 예술가를 몰라보고 이토록 홀대할 수 있는지 마음 아프다. 평생 옻칠을 하며 피나는 노력을 해 온 업적을 칭송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엉뚱한 사람이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려고 특허를 낼 수 있는 우리나라가 부끄럽고 한심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다. 그만큼 우리의 전통문화인 옻칠 문화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고 무심했음을 인정해야겠다.  그는 현재 세계 최대의 옻칠 미술관인 이와야마 칠예미술관의 관장이며 전용복 칠예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일본 이와데 현의 문화예술진흥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옻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숱하다. 그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영혼까지 옻을 입혀주고 싶다고 말한다. 간절히, 아주 간절히......

이토록 훌륭한 예술가를 지닌 한국에서 진정한 예술 문화가 꽃피울 그 날은 언제일까?

그 희망을 이루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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