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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없는 세상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은 통통 튀는 공 같다. 도대체 어디로 튕길 지 알 수 없다.
만약 이런 아이들이 없는 세상이라면 어떨까? 솔직히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시끌벅적 정신없는 아이들을 집에 두고, 나 혼자 훌쩍 떠나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잠깐의 자유 시간을 원한 것이지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원한 것은 아니다. 정말 아이들이 없는 세상은 살 수 없을 것 같다. 겨우 몇 시간인데도 아이들이 없는 집은 이상하리만치 낯설다. 매일 아이들에게 좀 조용히 하라고, 그만 뛰어 다니라고 잔소리하는 엄마지만 왠지 그런 아이들의 시끌벅적함이 있어야 안심이 된다. 내게 있어서 아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며 이유다. 잔소리를 하면서도 건강하고 활기찬 아이들 모습에 흐믓한 것이 부모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사랑하는 마음이 현실에서는 잔소리나 지나친 간섭으로 표현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없는 세상>은 지긋지긋하게 싸우고 자기들 말만 하는 어른들을 못 참아주겠다며 짧은 메모를 남긴 채 아이들이 몽땅 떠나버리는 내용이다. 세상은 난리법석, 부모와 가족들의 눈물바다로 정신이 없다. 결국 부모들이 텔레비젼에 나와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사정하고 애원한 뒤, 아이들이 돌아온다. 하지만 그 아이들도 어른이 되고, 어느날 아침에 아이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삶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다. 세월이라는 약을 먹고 아이가 어른이 되면 전혀 다른 인간으로 변신해버린다. 원래 자신도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음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못된 여왕처럼 자신의 기분에 따라 나쁜 행동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아이들에게는 착하게 살라고 하면서 정작 어른들은 얼마나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는가?
가만히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니 내 마음을 몰라주는 어른들이 섭섭했던 기억이 난다. 밤에 조금 늦게 잔다고 해서, 과자를 먹고 양치질을 안 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데 말이다. 이제 입장이 바뀌어 아이들을 나무라고 있는 나를 발견하니 참으로 멋쩍다. "미안하다. 얘들아~~"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렸다. '이 책도 뭔가 기발한 상상이 현실로 되는 모습을 보여주겠구나.'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왠지 허무하다. 뭔가를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짧게 끝나버린다. 이 책은 <아이들 없는 세상>을 포함한 19 가지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를 위한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작가의 말을 빌려야겠다. 바로 "언젠가는 어른이 될 아이들과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읽다보면 어느새 끝나버려, 뭔가 아쉬움이 밀려온다. 뭔가 더 할 말이 있지만 더 말하지 않겠다고 입을 다문 것 같다. 빤히 닫힌 입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삼켜버렸는지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절대 말을 하지 않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처럼 소녀가 말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다면 이 모든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나뭇잎이 둥글게 말려 있는 것을 보고도 까르르 웃을 수 있는 아이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시시콜콜 따지고 말해야만 속이 시원한 어른들에게는 너무도 시시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