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티타
김서령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그 날도 나는 오빠와 함께 피아노 학원을 향했다.

가는 길에 뭘 하느라 늦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의 화난 얼굴이 우리를 맞이했고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손바닥을 맞았다. 집에 와서 엉엉 울면서 다시는 피아노 학원에 안 가겠노라고 선언했다. 바로 그 날 이후로 내게 있어서 피아노뿐 아니라 음악은 절교한 친구와 같았다.  정말 꼴도 보기 싫었다.

피아노가 싫었던 것은 아닌데 피아노와 친해지기에는 그 선생님의 히스테리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검정 뿔테에 뽀글뽀글 파마 머리를 했던 노처녀 선생님은 늘상 먼지털이를 들고 피아노 치는 내 손가락들을 탁탁 치곤 했다.  인생은 왜 기억하고 싶은 것들은 금세 잊혀지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이리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걸까?  

바로 그 날, 먼지털이로 내 손바닥을 사정없이 때린 선생님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몹쓸 기억력 덕분에 씁쓸해진다.

'티타티타'가 <젓가락 행진곡>의 애칭인 줄,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티타티타 귀여운 피아노 소리가 내게는 그저 쿵쾅쿵쾅 괴로움의 손짓처럼 먼지털이의 악몽 같다. 사실 뭔지도 모르는 책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읽게 됐다.

 

"지금 두들겨야 할 건반이 어떠한 소리를 낼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마음이 간지러워지는 일이었다."    12p

 

소연과 미유.

여섯 살 꼬마 시절부터 동네 피아노 학원을 함께 다닌 친구.

어른이 되어서도 동거하며 취미 삼아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둘도 없는 친구.

그런데 늘 함께 나누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은 아닐까?

그녀들의 남자친구 지환과 윤수.

 

어린 소녀들이 어떤 건반을 두들겨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그 날처럼 인생은 변함없이 그들의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간지러움.....

참을 수 없는, 그러나 참을 수 밖에 없는 그 것.

특별히 놀랍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다음 장을 넘기게 되는 이유는 뭘까?

티타티타 젓가락을 두들기듯이 반복해서 연주되는 젓가락 행진곡처럼 인생은 흘러간다.

 

언젠가 우리는 땅속 지하철에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밖에 뭐가 보여?"

"온통 검은 세상."

"정말?"

"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검은 세상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말끄러미 무언가를 찾고 있는 우리 모습만 도리어 비치는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것도 없는 땅속에서 땅 밖의 세상을 감지하지 못한 채로 한동안 가두어지는 것. 땅 밖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동안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몸이 꾸물꾸물해지는 불안함.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쯤 우리도 다 알아, 라고 말할 수 없는 유일한 주눅.   285p

 

살면서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간지러움,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내 안의 케케묵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확인하면서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를 견주어 본다. 나 역시 몰랐다. 이런 '나'로 살아가게 될 줄은.

티타티타 우리는 오늘도 함께 연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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