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동행
미치 앨봄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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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삶은 만족스러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늘 어떻게 사느냐를 놓고 고민한다. 언제까지 살 지도 모르면서 당장 사는 문제에 급급해서 죽음을 외면하곤 한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 순간이 온다. 삶이란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8년의 동행>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작가 미치 앨봄과 유대교 랍비인 렙, 그리고 목사 헨리.   이들을 보면서 인생은 수많은 인연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퍼즐이란 생각이 든다.  세 사람의 인생은 서로 닮은 데가 전혀 없지만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듯 연결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하자면 결국 수많은 인연이 등장하게 된다.  그 중에서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연은 아름답고 소중하다.

<8년의 동행>은 미치 앨봄의 소중한 인연이며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다. 그는 대단한 행운을 가진 사람이다. 인생에서 한 명도 만나기 힘든 멘토를 이렇게 여러 명 만났으니 말이다. 내 인생의 멘토를 찾지 못했다면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미치 앨봄은 어린 시절 다니던 유대교 회당의 랍비로부터 추도사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 분은 왜  자신에게 추도사를 부탁했을까?  부담스럽지만 거절할 수 없어서 시작된 추도사 프로젝트는 장장 8년 간 이어진다. 추도사를 쓰려면 그 사람의 삶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관계가 점점 친밀해지면서 추도사가 아닌 그와의 추억 만들기로 바뀐다.  랍비는 종교를 초월한 지혜와 넉넉한 마음씨를 지닌 인물이다. 정말 존경스럽다. 종교의 이념 자체는 매우 유익하고 선하지만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는 이념과는 상반된 이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종교의 틀에 갇히지 않고 넓게 마음을 열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존경심이 절로 솟아난다. 랍비 렙이 보여준 모습은 한결 같다. 산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풍경을 만나듯이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열려 있는 것 같다. 평생을 이웃과 나누며 살다가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죽음을 맞는 모습은 마치 천사 같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랍비가 어떤 심정으로 그에게 추도사를 부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만날 수 있었다. 험한 세상을 욕하다가도 이런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숙연해진다.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 하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 삶은 어떠한가? 

미치 앨봄이 13살 유대교 성인식을 치를 때, 랍비는 그에게 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자네 부모님은 완벽한가?"  "아니오."

"그렇다면 자네 부모님은 개선할 필요가 있는가?"  "아니오."

어린 소년은 부모님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때문에 개선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얼마나 지혜로운 대답인지, 그 자신이 이해하는 것보다도 더 지혜롭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완벽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안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으로 살았다면 정말 축복된 삶을 산 것이다.

누가봐도 존경할 만한 랍비 렙과는 달리 목사 헨리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쳐 어둠의 세계에서 방황하던 젊은 시절을 보면 그는 구제불능의 인간이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자신의 어둔 과거를 떨쳐내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세상에 근본이 악한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면서도 우리는 남의 허물과 잘못을 쉽게 용서하지 못한다. 한 번 범죄자로 낙인 찍히면 세상에서 착한 인간으로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리 착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해도 그 진심을 의심받게 된다. 그런데 목사 헨리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더라도 주저하지 않는다. 미치 앨봄도 처음에는 그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진심은 언젠가 드러나는 법이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교회의 헨리 목사는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설교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처절한 바닥 인생을 살아봤던 헨리 목사는 마약중독자, 범죄자, 노숙자 등 세상이 외면한 사람들을 끌어안으며 아픔을 나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채근하고 나무라기 보다는 묵묵히 수용한다. 예배 중에 마약을 하는 사람도 있고 교회에서 먹고자는 노숙자들도 있다. 얼핏 보면 무슨 저런 교회가 다 있을까 싶지만 그는 그들이 변할 수 있다는 걸 믿어준다. 종교가 무엇이든 믿음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하게 한다.  인생역경을 이겨낸 헨리 목사와의 만남은 기존의 편견을 깨뜨린다. 과거는 과거일뿐, 한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언제든 새롭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줄 것. 종교라는 형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믿음에 집중할 것. 

<8년의 동행>은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가 만나는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나서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고마운 그 분께 편지를 썼다. 그리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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