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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그리는 페인트공 ㅣ 쪽빛문고 12
나시키 가호 지음, 데쿠네 이쿠 그림,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요즘 아이들을 키우면서 거리감을 느낀다. 점점 제 나름의 생각이 커지면서 부모의 마음과 엇갈리기 시작한다. 내심 섭섭하다. 분명 내 자식이지만 내 소유가 아님을 새삼 깨닫는 중이다. 어쩌면 변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로서의 내 자신이 아닌가 싶다.
품 안의 자식일 적에는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읽을 줄 알았는데 아이가 말하기 시작하면서는 그 말만 듣게 된 것 같다.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 줄어든 탓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말 자체를 가지고 판단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마음을 그리는 페인트공>은 아이들 동화다.
주인공 싱야는 페인트공이다. 손님이 주문한 색을 칠해주지만 매번 손님의 불평을 들을 때는 펑펑 울고 싶어진다. 힘들고 지친 싱야에게 감독은 이런 충고를 해준다.
"이봐, 가령 딱 잘라 회청색이라 했더라도 회청색이라고 할 수 있는 색은 수도 없이 많아. 손님이 정말 좋아하는 색을 느낌으로 알아야 하는 거야. 느낌이 오면 그 색을 페인트로 나타내는 거고."
말이란 너무도 불완전한 표현 방식이다. 회청색을 원하는 손님의 마음을 읽지 않고서는 절대로 손님 마음에 드는 회청색을 칠할 수 없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회청색이 아니라 그 색을 원하는 손님의 마음이니까.
싱야의 아버지도 페인트공이었다. 어머니와 결혼한 아버지는 프랑스로 갈 기회가 생겼는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서 싱야를 임신한 것도 숨긴 채 순순히 허락했던 것이다. 프랑스에 간 아버지는 페인트공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모양인데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 곳에서 돌아가셨다. 싱야는 아버지 무덤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프랑스로 가게 됐다. 그러면서 우연히 찾게 된 아버지의 닳아빠진 붓을 통해서 손님들의 마음을 읽게 됐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마음을 그리는 페인트공을 보면서 문득 아이들과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아이들에게 느낀 거리감은 다름아닌 내 탓이었다. 마음을 읽지 못하고 부모로서의 욕심만이 앞선 탓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바로 그 색을 칠해주는 것이 부모의 몫인데 자꾸 다른 색을 칠했으니 불평만 쌓인 것이다. 여덟 번이나 다시 칠했는데도 불평하는 손님 앞에서 울고 싶어진 싱야처럼 속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원인을 찾은 셈이다.
그림과 내용이 따뜻하면서 잔잔하다. 속상했던 마음을 위로 받는 느낌이다. 싱야는 결국 아버지처럼 불세출의 페인트공이 되었다는 행복한 결말이 특히 마음에 든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지만 닳아빠진 붓을 통해 그 마음을 읽어낸 싱야처럼 우리의 마음은 놀랍기만 하다. 언제든 활짝 열기만 하면 마음은 통하는 법이다.
이제는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불세출의 페인트공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