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들의 연애
어맨더 필리파치 지음, 이주연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재미있다기 보다는 기가 막힌 소설이다. 하긴 살아있지만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 등장하니 절대 평범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의 열정, 욕망, 즐거움이 없어 투덜대는 그들이 내게는 철 없는 애송이로만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기에는 안쓰러운 면도 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엉망진창 문제 투성이다.  미국 맨해튼, 잘 나가는 싱글들의 인생이 갑자기 꾜여 버린다.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스토커'다. 

갤러리 대표인 린은 멋진 커리어우먼이지만 욕망상실증으로 괴로워한다. 매사 무기력해지고 의욕이 없으니 살 맛이 안 난다.  어느 날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스토킹한다는 걸 알게 된다.  스토커는 대머리에 땅딸보 남자 앨런이다.  그도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회계사인데 린에게 반해서 따라다니다 보니 스토커 중독이 생긴 것이다. 린은 스토커 앨런을 보면서 자신도 욕망을 되살리기 위해 스토커에 도전한다. 그녀에게 딱 걸린 남자는 프랑스인이며 검사인 롤랑이다. 앨런은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가 다른 남자를 스토킹하는 것을 보고 롤랑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스토커의 스토커의 스토커. 황당하지만 이들 셋은 묘한 삼각 관계로 연결된다.  주말을 호텔에서 보내게 된 롤랑과 린은 지배인 맥스 덕분에 서로에게 끌린다. 롤랑과 린이 만나게 되면서 외톨이가 된 앨런은 아픔을 극복하고, 여자친구 제시카를 만나 삶의 활력을 찾는다. 하지만  롤랑과 린은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건방지고 못된 롤랑은 별 볼 일 없는 앨런의 행복을 시기하고, 린은 안정을 되찾은 앨런에게 끌린다.  그 때부터 린은 앨런을 스토킹하고, 롤랑은 린을 스토킹한다. 이들의 스토킹 행각은 너무나 뻔뻔스럽다. 귀찮을 정도로 어디든 대놓고 쫓아다니면서 앨런을 괴롭힌다. 스토커였던 앨런이 도리어 스토킹 당하면서 일상이 힘들어진다. 어쩔 수 없이 롤랑의 부탁대로 앨런은 주말을 호텔에서 린과 보내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앨런에게 린은 더 이상 매력적인 여자가 아니다. 그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스토커일 뿐이다. 사립탐정이자 섹스 중독자인 제시카는 앨런을 따라 호텔에 왔다가 지배인 맥스와 관계를 맺는다.

이쯤 되면 정말 한심하단 생각 뿐이다. 섹스 중독, 스토커 중독, 강박증까지 미친 게 확실하다. 재미있는 건 이들 셋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홈리스  레이다. 그는 전직 정신과 의사였지만 과도한 호기심중독으로 자격을 박탈당한 처지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 책 속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레이까지 본격적으로 이들 세 명의 관계에 끼어들면서 점점 복잡해진다.  거절당해야 끌리는 린, 뭔가 잃어버려야만 속이 편한 롤랑, 착하다 못해 답답한 소심남 앨런,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집착하는 레이는 못난이 인형처럼 붙어다니면서 엉뚱한 짓을 벌인다.

왜 이들은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안달복달 삶을 망치고 있는 것일까?  남들 보기엔 모든 조건을 갖췄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기에 스토커가 된 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고 흉내내면서 행복을 얻고 싶은 것이다. 왠지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 같아서, 그 사람의 행복을 뺏고 싶은 사악함이 스토킹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스토커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연애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현대인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스토커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완벽한 연애, 완벽한 사랑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데 어떻게 완벽을 바랄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의 삶은 완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들이 정신 나간 스토커를 그만두고 소울메이트를 만났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가. 비록 완벽한 소울메이트의 환상은 깨졌지만 말이다.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스토커 짓은 그만 둬라. 스토커가 되려거든 자기 자신의 스토커가 되어라.

사랑도 행복도 다 내 마음 속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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