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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 사는 집에 이런 낯선 이름이 있었다는 걸 이 책을 보며 알게 됐다. 외주물집, 막살이집, 도끼집, 외딴집, 독가촌, 차부집, 여인숙, 미관주택, 시민아파트, 문화주택...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겨우 몇 십 년 전의 모습이지만 지금은 너무도 까마득한 옛날 같다.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거주 공간을 통해 그 동안 잊고 있던 과거의 역사를 들취 보는 느낌이다. 집필 기간이 길다고 해서 더 훌륭한 책일 수는 없겠지만 10년에 걸친 작업은 감탄할 만하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노익상 님의 취재 여정은 삶의 공간과 사람들이라는 소재를 차분하게 담아낸다. 뭔가 특별한 사연이나 엄청난 이야기 없이도 사람을 끄는 매력이 충분하다.
역사 속에서 늘 주변인이었던 이들, 소외된 가난한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동네 어귀 혹은 길가에 마당도 없이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보잘 것 없는 집이 외주물집이다. 편안한 휴식의 공간, 안식처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노변가옥은 뚜렷한 계층 간의 차별을 보여준다. 1970년대 중반 새마을 사업으로 개량되면서 부득이하게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하려고 판 장벽을 둘렀던 '달방'은 절박한 현실의 상징물 같다.
산골 깊숙히 자리잡은 외딴집은 마을을 떠나 분가한 형태다. 강제적인 이주인 경우도 있고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마을과 떨어진 외딴집은 대대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근근히 삶을 유지할 뿐이다. 외딴집이나 독가촌은 과거 화전민들의 삶과 다를 바 없다.
가장 이색적인 곳은 바로 분교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만큼 독특한 학교 형태가 바로 분교란다. 교육열 하면 손에 꼽힐 만큼 대단한 우리나라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깊은 산간, 어촌, 섬 지역까지 사람 사는 곳이라면 설치된 분교는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겐 희망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여느 공간과는 달리 시멘트와 블록 벽돌로 지어져 제법 관공서 분위기를 내며 개구쟁이 아이들 덕분에 활기차다. 다만 역사적으로 볼 때 '분교'의 시작은 순수한 교육적 의미보다는 일본의 식민 정책의 도구로 쓰였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본격적인 교육 현장이 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끈끈하고 따뜻한 스승과 제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현재는 점점 폐교하는 곳이 늘고 있어 안타깝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간이역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덜컹덜컹 창 밖의 풍경을 보며 타고 다녔던 비둘기호도, 그 당시 특급으로 불리던 통일호도 사라졌지만 간이역이 주는 추억은 영원히 남을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간이역이 근대화 과정에서 주는 의미는 기존 가치체계의 붕괴였다. 가난하지만 천천히 느리게 살았던 그들에게 기차 속도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에 소개된 문화 주택은 나의 어린 시절 동네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형태의 단독주택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점점 세월이 흘러 다양한 형태로 개조되면서 그 때 나눴던 이웃 간의 정도 변한 것 같아 아쉽다.
어디 하나 화려하고 멋진 곳은 없지만 시선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그 곳. 관심 밖의 대상들이 따스한 시선을 통해 새롭게 다가온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