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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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고무줄 같다. 어떤 때는 쭈욱 늘어졌다가 어느 순간에는 팽팽하게 조인 듯 느껴진다.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건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주인이 뒤바뀐 탓이 아닐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신발은 오른쪽과 왼쪽 중 어느 쪽을 먼저 신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일 벌어지는 일상이지만 자신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을 의식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무의식중에 습관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매일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오랜만에 읽는 산문집이다. 스위스 태생이며 초등학교 교사로 13년 간 재직했고 이후 전업 작가가 되었다는 페터 빅셀의 책이다. 낯선 누군가와의 첫 만남처럼 조심스레 책을 펼쳤다. 그는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항상 기다림을 경험하면서도 기다림에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나로서는 여유로운 그가 부럽다. 조급증은 어른이 되면서 새롭게 얻은 병이다. 원래 느긋하고 공상하기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변해도 많이 변했다.

시간이 아주 많다고 느끼는 건 어린이의 마음과 흡사하다. 그 마음이 그립다. 언제나 시간은 정확하게 제 속도대로 가고 있는데 내 마음은 쫓기듯 허둥지둥 가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바쁘고 정신없다.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정신없이 살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간 지 모르겠네요.”

잠시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 것 같다. 누군가의 생각, 느낌을 함께 나누면서 내 안의 의미를 찾게 된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서 혹은 그냥 떠나기, 일상 탈출을 위해서 기차를 탄다. 혼자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술집에서 함께 본다. 죽은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가로세로 낱말 퀴즈 칸을 채우는 취미가 있다. 작가의 일상은 특별할 줄 알았는데 지극히 평범하다. 왠지 작가가 무언가를 바라보면 관찰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냥 바라보는 거라고. 아무런 판단없이 바라보고 듣는 일, 그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새로 산 주머니칼에 고도계가 달려있다는 이유만으로 고도가 적혀있는 역과 정거장을 찾아다닌다. 왜? 고도계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보려고. 새로운 물건이 작동하는 것이 신기하고 즐거우니까. 단순한 즐거움이 일상의 행복이 아닐까?

그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었다.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여유와 넉넉함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긴 고무줄을 원한다면 자신이 힘을 줘서 당기면 된다. 우리는 때때로 시간이 아주 많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마치 아무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시달린다. 시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간다.

또한 그는 공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혼자 살면서 집이 작아졌다고. 여럿이 살 때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면서 그만한 집 크기였다면 혼자 있으면 자신이 앉아 있는 방만 존재한다고. “내가 혼자면 집도 혼자다.” -페터 빅셀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곳을 만드는 건 순전히 우리 마음이다. 해야 할 업무를 미루고 안할 수는 없지만 그 와중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좁은 집이 갑자기 커질 리는 없지만 쉴 수 있고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공간만으로도 넉넉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2009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고, 바쁘다고 핑계 대며 못했던 일들을 생각해본다. 우리에겐 아주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그럴 마음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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