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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ㅣ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고 여린 여자아이가 장대 끝에 서 있다. 긴 장대 아래를 보니 엄지 손가락 하나가 받치고 있다.
이 아슬아슬한 묘기를 보며 박수 치며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책 속에 등장하는 원숭이 주인은 실제로 어린 조카 남매를 장대에 올리고 이런 묘기를 하다가 사람들로부터 몰매를 맞는다. 가난하고 힘없는 그들에게 이런 묘기는 끔찍하고 모욕적인 일이다. 장대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아이들 모습은 마치 그들의 삶과 다를 바 없으니까.
인도 작가 로힌턴 미스트리의 장편소설 <적절한 균형>은 대단한 작품이다. 두툼한 책 크기에 놀라고,그 두께만큼이나 묵직한 삶의 무게때문에 놀랐다. 어떻게 이토록 비참하고 절망적인 삶이 존재하는 것일까? 세상의 불평등, 부정, 비리는 신의 위대한 힘으로도 어쩔수 없는 것인가? 신이 인간에게 준 삶 중에서 너무도 가슴 아프고 슬픈 삶이 여기 있다.
여기 네 명의 주인공이 한 지붕 아래 모였다. 비극적인 운명 속에 잠시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그 집에서였다. 돌아보면 그저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그들에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니, 가혹하다.
디나, 그녀의 인생은 열 두살 이후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의 밝은 미래를 한순간에 암흑으로 몰고갔다. 디나의 오빠 누스완은 철저히 그녀의 삶을 짓밟고 이용했다. 다행히 러스텀을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지만 너무 짧았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디나는 남편이 세들어 살던 집에서 혼자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동생을 걱정하는 척 재혼을 종용하는 오빠 누스완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해도 너무한다. 디나와 누스완이 남매지간인 것이 불행같다.
마넥, 그는 디나의 동창생 아들이다. 그녀 집에서 하숙하게 된다. 대학 기숙사의 더럽고 괴로운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 하숙을 선택한 것이다. 디나의 잔소리를 싫어하면서도 점점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다. 마넥은 비극 속 다른 주인공보다는 순탄한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의 고통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아버지와의 갈등과 오해 속에서 홀로 공허한 삶은 산다는 건 끔찍한 일이니까. 각자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이시바와 옴프라카시, 이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운명이다. 삼촌과 조카 사이로서 유일한 혈육인 이들은 재봉사다. 디나의 집에서 재봉 일을 하게 된다. 마넥과는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디나의 집까지 오게 된다. 그 뒤로 마넥과 옴은 친구가 된다. 그들이 한 지붕 아래 살게 되면서 정말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그들이지만 서로 돕고 아끼면서 그들은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은 장대 끝에 올라간 소녀처럼 아슬아슬한 찰나였다.
그들의 삶 속에서 적절한 균형은 무엇일까? 희망과 절망, 기쁨과 고통, 만남과 이별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있는 일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포기하지 않고 버텨 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참고 견디기엔 그 불행이 너무 크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못 견딜 것 같은 불행을 견뎌내는 그들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