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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탐닉 - 북촌 10년 지킴이 옥선희가 깐깐하게 쓴 북촌 이야기
옥선희 지음 / 푸르메 / 2009년 11월
평점 :
어릴 적 골목길이 생각난다. 비슷한 한옥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어디든 우리집 같았다. 대문은 늘 열려 있어서 마당과 골목을 오가며 신나게 놀았다. 저녁 무렵 밥이며 찌개 냄새가 솔솔 올라오면 저마다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어린 시절 살던 그 집, 그 골목길이 그리웠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니, 정말 그립다는 느낌조차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막상 그 때를 떠올리니 파도처럼 순식간에 많은 추억들이 쏟아진다. 우리 옆 집에 누가 살았는지, 골목 끝에 어떤 가게가 있었는지, 아이들이 제일 신나게 놀던 골목이 어디였는지 등등
그런데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서먹한 친구 같다. 주변에 꼭 가야할 병원, 약국, 세탁소 등은 알지만 예전처럼 동네가 친근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아는 것과 친한 것은 너무나 다르다. 친하다는 건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북촌 탐닉>은 북촌을 사랑하는 옥선희 님의 이야기다. 경복궁과 창덕궁 일대 한옥마을이라 불리는 그 곳에서 10년 간 살아온 주민으로서 북촌의 아름다움과 멋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책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곳곳을 소개한다는 건 웬만한 관심과 애착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 또 그만큼 멋진 곳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부자 동네에 넓은 평수 아파트에 사는 것이 자랑인 세상에, 차가 다니기엔 좁은 골목을 올라가야 있는 집이 더 멋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언덕 위에 집이라 동네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서향이라 멀리 인왕산 너머 노을이 한 폭의 그림같은 집. 주변과 어우러진 정겨운 동네 풍경이 이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됐다. 언제까지 그 모습을 간직했으면 좋으련만 점점 현대식으로 변해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 도심에 고풍스러운 멋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외국인들이 방문하면 자주 찾는 곳인만큼 옥선희 님은 홈스테이를 하고 있다. 돈벌이 보다는 봉사활동에 가깝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전혀 생면부지의 외국인과 한 집에 머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데다가 식사와 간식까지 챙겨야 하니 이래저래 신경쓸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홈스테이와는 달리 평범한 한국 가정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들에게는 인상적인 경험일 것 같다. 덕분에 여러 외국인들과 한국의 정을 나누며 친구가 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은 경험인 듯 하다.
서울에 살면서도 북촌의 매력을 제대로 몰랐구나 싶다. 세련된 현대건축물과 공간이 늘어나기는 했어도 여전히 북촌은 북촌만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천천히 거닐며 구석구석 숨겨진 보석을 찾듯이 북촌을 즐기고 만날 수 있는 저자가 부러워진다. 이렇게 진심으로 북촌을 아끼고 지키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이다. 편의를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옛 건물을 부수고 길을 내는 요즘에 아직 북촌이 건재한 것은 모두 북촌 지킴이들 덕분이다.
서울 한 복판에 자리잡은 북촌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예술이 살아숨쉬는 공간이며 자랑할 만한, 사랑할 만한 우리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