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시를 쓰지는 않더라도 시를 알아보는 맑은 눈들에게" - 최영미 시인

 

내가 사랑하는 시를 떠올려본다. 최영미 시인처럼 시에 푹 빠진 시기는 없었지만 은근히 좋아했던 기억은 난다. 마음에 와 닿는 시들을 예쁜 공책에 또박또박 적어놓거나 편지 말미에 멋진 시를 인용하여 마무리하곤 했다.  내게 있어서 시란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해내는 놀라운 언어였다.

시인이 사랑하는 시는 어떤 것일까?  마치 시인의 오래된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다. 사랑하는 시와 그 시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진 책이다. 이전에 <주간동아>에 연재했던 글들이 기본이 된 모양이다. 영문시 중에는 직접 번역한 시들이 대부분이라 번역된 언어의 묘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영문시를 읊조리며 감동할만큼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탓에 원문이 주는 감동을 100% 느끼지는 못하지만 번역된 우리말로도 그 느낌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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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많은 것을......

                  프리드리히 니체, 이상일 옮김

 

언젠가 많은 것을 일러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 속에 말없이 쌓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이는

오랫동안 -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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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게 딱 맞아

            마거릿 애트우드, 최영미 옮김

 

너는 내게 딱 맞아

눈에 걸린 낚시처럼

 

물고기를 낚는 갈고리

열려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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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집을 읽으니 설렌다. 시를 읽고 노래하던 때가 언제였나 더듬어 보니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사춘기와 사랑을 하던 때였다. 잘 갈고 닦여진 언어는 마음까지 정화시키는 것 같다. 수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두 줄의 글로 표현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최영미 시인이 들려주는 세계의 명시를 만나면서 조금씩 무덤덤하고 메마른 감성을 적셔본다. 아름답게 절제된 언어에 열광하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니 문득 웃음이 난다. 우리의 마음 속에도 시인과 같은 열정이 숨어있을 것만 같다.

이 세상에 시인이 없다면, 시가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어떤 유명한 시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움직이는 시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들의 지저귐, 파란 하늘이 전혀 감동을 주지 않는다면 인생은 너무 슬플 것이다.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거나 시시하다고 느끼는 건 우리의 마음이 얼어붙은 탓이다. 나이가 들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열정이 식어서 늙는 것이다.

요즘들어 부쩍 늙은 기분이 들었는데 시집 덕분에 기운이 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 중에서 한 편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만나면 된다.

최영미 시인이 말하는 맑은 눈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조금은 정화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이 아니면 시를 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시를 써 보고 싶다.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진실된 한 줄의 글이 바로 가장 멋진 시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

문득 조지 버나드쇼가 미리 지었다는 묘비명이 떠오른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자신의 인생을 한 줄의 글로 표현할 때 "후회없이 만족하며 가노라"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처럼,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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