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인디스토리 엮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나이들수록 주책이다. 눈물이 많아진다. 그래서 눈물나는 이야기나 영화는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다.

남들보다 특별히 착하거나 감성이 풍부하지 않은데 눈물샘이 고장난 것인지 약간의 자극에도 눈물이 난다. 그게 참 마음에 안 든다. 감동이란 마음이 움직여서 실질적으로 변화가 있어야 되는데 그냥 마음만 움직이고 그뿐이다. 그래서 부끄럽다. 

영화 <워낭소리>가 개봉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들으면서도 안 본 이유는 그 때문이다. 헛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워낭소리>가 책으로 출간되었다하니 이번에는 피하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은 영화 <워낭소리>가 만들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 의외로 책은 얇기만 하다. 슬픔과 고통도 극한 상태에서는 침묵하듯이 <워낭소리>는 응축된 글로 전해진다. 이충렬 감독이 제작 당시 얼마나 절박했는지, 보여지는 영상 뒤에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를 영상에 담는다. 하지만 수많은 영상들 중에 편집이라는 과정은 진실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그는 고백한다. 할아버지와 늙은 소를 촬영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소가 어서 빨리 죽었으면 했다고. 기나긴 제작 과정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감독이란 직업이 화려해보이지만 그건 성공한 감독의 경우고, 이제 겨우 독립 영화를 찍은 햇병아리 감독에게는 인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왜 그는 늙은 소와 할아버지라는 주제를 선택한 것일까?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은 것일까?

농사꾼 할아버지와 늙은 소는 현대인들에게는 잊혀진 존재다. 엄연히 지금 공존하지만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문득 <전원일기>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워낙 오랫동안 방영되어 아역으로 나온 배우가 성인이 될 때까지 실제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인기 드라마였다. 그런데 시대를 반영하듯 더 이상 시청자들의 호응이 없어지면서 종영되었다. 그 뒤로 비슷한 농촌 드라마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췄던 것 같다. 고향을 떠올리며 가슴 훈훈한 이야기로 웃음과 감동을 주었던 농촌 드라마가 사라지면서 우리네 정서도 변한 것 같다. 아니,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사라진 것이다.

이충렬 감독의 선택은 운명적인 것 같다. 숱한 실패로 절망하던 그에게 <워낭소리>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

따뜻하고 넉넉한 우리네 인심은 농사 짓는 고향 마을과 함께였는데 지금은 깍쟁이들이 판 치는 세상이 됐다. 눈 뜨고 코 베가는 살벌한 도시 풍경의 드라마나 영화가 판을 쳤다. 한 때는 깡패 영화가 인기였으니까.

2009년 1월 드디어 <워낭소리>가 개봉되었다. 과연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 속에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300만이 이 영화를 보며 눈물 흘렸다.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늙은 소가 전부인데다 특별한 대사도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성공한 것이다.

농사꾼 노부부와 늙은 소는 메마른 감성을 자극하며 삶의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와 진한 감동을 전해줬다. 이제는 영화를 볼 준비가 됐다. 감동의 실체를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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