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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 박찬일의 이딸리아 맛보기
박찬일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평점 :
유쾌하다. 상큼한 레모네이드 한 잔을 마신 기분이다. 요리사가 어쩜 이렇게 글을 맛깔나게 쓸 수 있는가 했더니 그는 전직 잡지 편집장이었다. 서른 넘은 나이에 글과는 무관한 요리를 배우고자 이딸리아 유학을 가서 기어이 요리사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씨칠리아에서 1년 간 요리사로 지냈던 '체험 삶의 현장'과도 같은 이야기를 풀어놨다. 키득키득...... 그가 고생하며 흘린 땀방울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다. 덕분에 낯선 이딸리아 요리와 씨칠리아가 엄청 친근하게 느껴지니까.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호기심때문만은 아니다. 소설가 김중혁님의 소개글과 책 속에 향신료처럼 곁들여진 일러스트가 구미를 당겼기 때문이다. 생생한 씨칠리아 체류기는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전쟁터 같은 주방의 실체를 보여준다. 지글지글 주방의 열기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 하다. 남자 요리사들의 거친 입담, 과장된 몸짓이 눈 앞에 상상이 된다. 그리고 일면식 없는 주방장 쥬제뻬가 마치 옆집 아저씨처럼 느껴진다.
다만 로맨스는 빠져있다. 아름다운 여인과의 만남은 전혀 안 나오지만 침이 꼴깍 넘어갈만한 맛있는 요리 이야기로 독자를 유혹한다. 요리가 좋아서 먼 타국까지 떠날 정도였으니 그의 로맨스는 요리라고 해야 되나? 요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만으로 나이도, 국경도 잊은 채 떠났던 용기가 아름답다. 멋진 사람이다.
원래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씨칠리아에서는 로베르또로 불렸던 남자.
사진을 보니 요리사보다는 편집장이 더 잘 어울려보인다. 아무렴 어떠랴. 글이든 요리든 자기만의 손맛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데....... 또 한가지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책과 함께 초판 한정 부록 DVD를 보면 알 수 있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이딸리아 베스트 요리 열 가지를 직접 시연하며 설명하는 모습이 차분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요리도 잘하고 글도 잘쓰고 말도 잘하는 로베르또 박찬일, 정말 부럽다. 걔 중에 내가 잘 하는 것은 뭐지?
맛있는 음식 먹기, 재미난 글 보기, 열심히 듣기.
역시 사람은 제각기 몫이 다른 거다. 내 몫에 충실해야겠다. "좋은 글과 요리,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