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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어젯밤에 꿈을 꿨다. 주변에 멀쩡하던 사람들이 마치 변신로봇처럼 괴물로 변하더니 나를 쫓아오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도망 다니는, 한 마디로 개꿈을 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괴물로 변한 사람들에 대한 나의 불편한 심경을 들어낸 것 같다. 이 무슨 꿈과 해몽인가?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는 꿈같은 이야기다.
읽는 내내 꿈속을 헤매듯 어리둥절하다가 점점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코믹 SF”라는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란다. 왠지 공상과학에서 등장할 법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미스터리한 사건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가볍고 유쾌해지는 것 같다. 다만 그 유쾌함이 자신의 코드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어색할 뿐이다.
잘 나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리처드는 대학 시절 교수님의 만찬 초대를 받는다. 그러다가 문득 여자 친구 수잔과의 저녁 약속이 떠올라 급히 나온다. 차를 운전하던 중 길가에 유령처럼 서 있는 고든을 보고 깜짝 놀란다. 고든은 리처드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님이자 수잔의 친오빠다. 그리고 갑작스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대학 동창이자 해괴한 사건으로 학교를 떠났던 ‘더크’가 만나자는 것이다. 다음날 더크의 탐정사무소를 찾아간다.
왜 ‘성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느냐 하면 모든 사물은 기본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란다.
그런 그가 고작 해결하는 일은 노부인의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이지만.
고양이를 찾는 일과 양자역학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사람과의 관계, 사건, 현상들이 보이지 않는 요인들로 인해 영향을 받고 예기치 않은 결과가 벌어진다. 우리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다 나름의 인과 관계가 존재하듯이 말이다. 하물며 개꿈조차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내 행동이나 말이 남들에게는 괴물처럼 끔찍스럽고 불쾌했던 것은 아닐까? 자아성찰을 위한 개꿈이었나?
어찌됐든 다소 사기꾼 같은 더크의 말에 설득당한 리처드는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는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가 더크라는 점이 아쉽다. 더크라는 인물은 이제껏 내가 좋아하던 탐정의 이미지와 가장 동떨어진 모습이다. 둥그런 얼굴에 눈과 목살이 약간 쳐졌고 두꺼운 금속 테 안경을 쓴데다가 하는 말마다 믿음이 안 간다. 이런 나의 불신과는 상관없이 그의 역할은 확실하다. 인류를 구하는 일.
지금 편안하게 글을 쓰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도 모두 더크 젠틀리 덕분인가?
인류를 구한 영웅이 화려하고 멋진 슈퍼맨이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라니 우습다. ‘더크 젠틀리’라는 이미지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 뜻? 거창하게 느껴지는 일들도 사실은 작은 일들의 연속이지 않던가. 한 사람의 작은 변화,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와, 코믹 SF소설 속에 계몽적인 메시지가 있었구나.
지금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내가 할 일은 통쾌하게 웃는 것이다. 일상의 피로와 짜증이라는 괴물을 웃음으로 탁탁 털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