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마릴린 - 이지민 장편소설
이지민 지음 / 그책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나와 김혜수?

당당하고 섹시한 여배우를 나와 연관짓기는 어렵지만 제법 친숙한 느낌이 든다. 물론 혼자만의 착각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현재 이 순간을 살고 있으니  언제 어디서든 만날 우연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나와 마릴린?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그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섹시한 이미지뿐이다. 한 때 인기절정의 여배우였으나 그녀 자신은 한 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불행한 미녀로 기억된다.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그녀를 새롭게 만났다.

이 책은 두 장의 사진을 통해 탄생됐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한 여자 통역사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전쟁 직후 미군 위문공연을 위해 한국에 온 마릴린 먼로를 찍은 사진이 그것이다. 사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끄집어낸 점이 특별하다. 엄청난 비밀이나 사건없이 두 여인의 모습만을 보여준다는 것이 조금 싱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책 속의 주인공 '나'의 이름은 애순, 영어 이름은 앨리스다. 그녀의 이름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렸다면 빙고다. 그녀가 만약 현재를 살고 있다면 흔한 인물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퍽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6.25전쟁을 겪은 세대라기보다는 현재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과 더 흡사하다. 분명 전쟁이 준 충격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거짓사랑에 방황하는 모습이 더 부각된 느낌이다. 어쩌면 세월은 흘러도 20대의 삶은 늘 같은 모습이 아닐까?  젊고 똑똑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미숙한 모습이나 겉은 화려하지만 내면은 외롭고 쓸쓸한 그녀들이 낯설지 않다.  며칠 간의 한국 방문에서 보여지는 마릴린 먼로는 섹시한 여배우라기 보다는 평범한 나, 앨리스와 흡사하다. 그녀의 섹시한 이미지는 남자들이 만들어낸 이기적인 상징같다. 은빛 새치머리를 맥주로 노랗게 물들인 앨리스처럼 마릴린 먼로의 금발도 만들어진 것이다. 남자들이 환호하는 금발 미녀가 되기 위해 원래의 머리색을 감추듯 그녀는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며 산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과 그녀들의 삶이 겹쳐져 묘한 슬픔이 느껴진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이 책을 읽는 나 역시 혼란스럽고 울적한 시기였다. 뭔가 내 자신의 알멩이를 잃어버린 듯한 허탈함, 혼자 남겨진 듯한 외로움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녀는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

나와 마릴린.

나와 김혜수.

남자들이 바라볼 때는 엄청나게 다르지만 여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녀와 나는 다를 게 없다고.

예쁘고 섹시한 여자도 외롭다. 만인의 사랑을 받아도 단 한 사람, 자기 자신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외로운 법이다. 젊음, 섹시함, 아름다움은 순간이다. 만약 마릴린 먼로가 쪼글쪼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았더라면 수많은 남성팬들이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쪼글쪼글 할머니로 살더라도 자신의 본모습을 사랑했다면 그녀와 그녀를 사랑하는 한 남자는 행복했을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남자들은 여자를 볼 때, 예쁜 여자 혹은 예쁘지 않은 여자로 분류한다지만 상관없다. 여자의 행복은 수많은 남자들의 평가와는 무관하니까.

그래서 앨리스의 마지막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 당신이 찾아야 할 것이 있듯, 나도 찾아야 할 게 있어요."  (245p)

덕분에 나도 잠시 잃어버렸던 그것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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