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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공책 - 부끄럽고 아름다운
서경옥 지음, 이수지 그림 / 시골생활(도솔)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나 역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면서도 왠지 그리운 생각이 든다.
예순 넘은 할머니도 자신의 엄마 앞에서는 어린 딸이 되는 것 같다.
엄마의 공책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저자 서경옥 님은 손재주 많고 살림 잘 하는 주부다. 아흔 살 넘은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풋풋한 소녀 같고, 외동딸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연륜이 느껴진다. 이 세상에 딸로 태어나 엄마가 된 사람들이라면 상황은 달라도 공감할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공책은 참 예쁘고 아기자기하다. 아흔 살 엄마의 손편지와 옛이야기, 그리고 외동딸의 그림이 있어 마치 그들 가족 속에 초대된 것 같다. 자식을 출가하고 삶의 여유가 생길 시기에 강원도 봉평에 집을 마련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봉평 흥정계곡 근처 예쁜 집을 구경한 적이 있다. 허브 정원에 예쁜 그림 푯말도 있고 새집도 있는 그 곳을 구경하면서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정성이 대단하구나 감탄했다. 왠지 그 곳이 저자의 집이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해 본다.
남편 분은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목공일을 하고, 자신은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기며 사는 모습이 참 멋지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잘 살아온 사람답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원 생활과는 다르지만 여유를 즐긴다는 점에서는 부럽기만 하다.
그녀는 자신의 책에 '부끄럽고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놓았다. 무엇이 부끄러울까?
오히려 당당하게 자랑해도 될 만한 삶인데 말이다. 그녀의 부끄러움은 아마도 소녀적 감성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아흔 살 엄마 집에 놀러가서 곤히 낮잠 자는 모습은 미래의 나를 상상하게 만든다. 누구나 엄마 앞에서는 어린애가 되는 가 보다.
그녀는 남편의 헤어진 바지를 예쁘게 수 놓아 멋진 바지로 변신시킨다. 엉켜진 실타래도 차분하게 술술 풀어낼 줄 안다. 사랑스러운 손주를 위해서 입고 있던 치마를 잘라 이불을 만들어낸다.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정성이 가득 담긴 반짇고리를 선물한다. 자신은 조금 수고스러워도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그녀는 요술쟁이다. 삶의 고단한 일들이 그녀에게는 보람된 일로 바뀐다. 물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자신 보다는 가족을 챙기느라 희생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
엄마로 산다는 건 가끔은 휴일도 퇴근 시간도 없는 고단한 직업 같다. 그럴 때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훌훌 모든 것을 떨쳐 내고 혼자이고 싶다. 그러나 문득 깨달은 것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는 것이다.
행복은 산 너머 남쪽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 순간에 있음을.
나도 언젠가 엄마의 공책을 채울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