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책 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토머스 에이킨스의 <그로스 박사의 임상강의>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한 냉정한 표정의 그로스 박사의 모습이 피범벅된 수술대와 대조를 이루면서 섬뜩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표지에는 잘려서 안 보이지만 책 속에 있는 전체 그림을 보면 그로스 박사 옆에서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는 여인이 있다. 분명 수술하는 환자의 가족일 것이다. 그 당시 수술은 죽음을 담보로 한 모험이라 할 만큼 위험성이 높다.

이 책은 19세기 의학사와 미스테리 픽션을 결합한 팩션이다.

원제가 <사기의 해부>라고 한다. 이 얼마나 도전적인 제목인가 싶다. 의학사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하여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의학을 사기라고 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솔직히 의학계뿐 아니라 어떤 집단이든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할 것이다. 의학의 발달이 해부학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시체가 이용되었다는 의미다. 수많은 시체와 의학계의 권력 다툼 속에 순수하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킬 의사가 얼마나 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셜록 홈스와 비견되는 주인공 캐롤은 우직한 성격의 의사다. 그는 윌리엄 오슬러 박사를 존경하여 그의 밑에서 수련을 받는다. 어느 날 오슬러 박사와 아홉 명의 참관자들은 다섯 구의 시체를 해부하기로 한다. 그런데 오슬러 박사는 마지막 시체는 해부하지 않는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시체였기 때문일까?

여기는 두 명의 화자가 이야기를 이끈다. 의사이면서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탐정 역할의 캐롤과 미지의 여인이다. 씨실과 날실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점점 진실에 접근해간다.

의학은 분명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었고 그 존재 의의는 명확하다. 그러나 의학의 윤리적인 측면은 다르다. 의사라고 해서 절대전능의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환자는 누구나 약자다. 이 책의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목숨은 희생되어야 마땅한가?"

윤리적인 문제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논란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면 반대할 것이고, 목숨을 구하는 다수 중의 한명이 자기 자신이라면 찬성할 것이다. 그렇다면 권력을 쥔 자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길 것이고 약자는 희생자가 될 것이다.

<죽음의 해부>는 일반 추리소설과는 달리 흥미로움과 진지함이 적절히 섞여 있다. 사실 결말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사건 속에 숨겨진 인간의 탐욕과 이기를 발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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