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
크레이그 벤터 지음, 노승영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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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DNA가 전부인 내게 이 책은 일종의 도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책이 전문적인 학술서적이 아니라 크레이그 벤터 박사의 자서전이란 점이다.

사진으로 본 그는 거구의 다부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신만만함은 글 속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신의 연애사를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면이 너무 지나치게 솔직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읽다보니 그런 솔직함과 거침없는 성격이 그만의 에너지인 것 같다.

그의 자서전은 특이한 구성으로 되어있다. 세계 최초 인간 게놈지도를 완성한 주인공답게 자신의 DNA를 분석한 내용이 곳곳에 실려 있다. 어떤 질병에는 취약하고 강한지 알 수 있는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 어쩌면 이 자서전이 그가 이뤄낸 업적만큼이나 큰일을 해내지 않을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생명과학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유전체 연구를 통해 질병 예측이 가능해진다면 우리 삶도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위험한 장난이나 모험을 좋아하는 개구쟁이였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공부는 안 하고 제 하고 싶은 일에 빠져 있다고 잔소리할 일도 아닌 것 같다. 호기심과 열정이 있다면 꿈은 이뤄진다는 걸 몸소 보여준 사람이 있으니까.

청년 시절에는 베트남 전쟁에 징집되어 의무병이 된다. 수많은 군인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는 인간 생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때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에는 열심히 대학 공부를 한다. 그 당시 두 권의 책에 대해 독후감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이것이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첫 번째 책은 <외로운 바다와 하늘>이라는 프랜시스 치체스터가 1966년 단독 세계일주 항해를 쓴 글이다. 그는 65세의 나이로 불가능한 도전을 이뤄낸 것이다. 실제로 벤터의 취미는 항해다. 바쁜 연구 일정 중에도 틈을 내어 항해를 즐긴다. 바다에 매료된 점이나 끊임없이 꿈을 키워가는 모습이 닮아있다.

두 번째 책은 제임스 왓슨이 쓴 <이중나선>이다. 노벨상까지 수상했지만 다른 이들의 데이터를 이용해 위대한 발견을 했다는 오명을 쓰고 있다. 훗날 왓슨은 벤터의 삶에도 등장한다. 국립보건원에서 연구하며 만나게 된 왓슨은 그리 유능한 과학자로 보이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국립보건원을 사직하고 새로운 민간 연구소를 차리기까지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과학자들은 연구에만 몰두했을 것 같은데 연구비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음을 알게 됐다. 과학과 정치의 연계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 실상을 들여다보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다행히 벤터 박사는 상업적 이득과는 무관하게 인공생명체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다하니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그가 평생에 걸친 연구 끝에 발견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아니 모든 생명은 DNA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포나 종이 살아가는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생명을 이해할 수 없다. 생명체의 환경은 유전부호만큼이나 고유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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