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배우 차인표의 장편소설이라고 해서 그냥 넘겼다. 요즘은 자신의 유명세에 힘입어 출간하는 책들이 많기 때문에 다소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겨 책 소개를 보았다.

1997년 종군 위안부 "훈 할머니"에 관한 뉴스를 보고 글을 쓰게 되었고 이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걸 알게 되니 이 책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워낙 봉사 활동을 많이 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 그 마음을 글로 옮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글쓰기에 초보인 사람이라도 10년을 다듬은 글이라면 그 정성과 노력이 남다를 것이다.

나는 원래 작품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읽기 싫은 작품은 읽지 않으면 그만이다. 일단 누군가의 작품을 읽는다는 건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겠다는 의지다. 한 장의 편지, 한 줄의 글도 마음을 담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장편소설을 써냈으니 재주 많은 그가 부러울 따름이다.

<잘가요, 언덕>은 1930년대 백두산 부근 호랑이 마을의 이야기다. 마을 촌장님의 손녀딸 순이와 호랑이 잡는 황포수의 아들 용이, 그리고 불쌍한 고아 훌쩍이가 등장한다. 그런데 특이하게 새끼 제비가 등장하여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동화같은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암울하고 힘든 시기인데도 밝고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는 것도 새끼 제비의 역할인 듯 싶다. 어쩌면 이 책은 어른들이 보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나왔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책 출간과 함께 OST도 발매되었다고 한다. 미리보기로 보니 그림과 노래가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해낸 것 같다. 이야기가 참 따뜻하다. 용서와 사랑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잔인하고 못된 일본군마저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일본군 가즈오의 편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시대의 아픔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풀어냈다.

배우 차인표라는 색안경을 벗어낸다면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따뜻함을 지녔다. 또한 첫 장부터 몰입하여 읽을 수 있을만큼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흥미롭다. 황포수와 용이가 찾아 다니는 백호, 용이와 순이를 쫓는 일본군 가즈오로 단순화된 대립, 갈등이 다소 허전한 면이 있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장점일 수도 있다. 시대적인 아픔을 일일이 보여주지는 않지만  순이가 말해준 엄마별을 통해 용서와 사랑이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임을 극대화시킨다. 다만 순이로 대변되는 종군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이 생략된 뒷 이야기는 감히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용서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1930년대 우리 역사의 한 자락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잘가요, 언덕>, 잘 읽었다. 아이들에게도 읽어주고 싶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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