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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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의 명성만을 들었다. 널리 알려진 일본 작가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역시 작가는 작품으로 보여주면 그만이다.

감성적인 소설은 잘 차려입은 정장이라면 에세이는 편안한 차림으로 독자를 맞이하는 것 같다.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원제는 '하찮은 것들'이다.

정말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만약 나라면 겨우 한 두 마디의 감상이나 의견으로 끝났을 소재들이 한 편의 글이 된다니

놀랍다. 멋지게 차릴 것 없이 정말 하찮은 것으로 취급될 수 있는 고무줄, 레몬즙 짜개, 트라이앵글, 케이크, 책받침, 운동화 등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본 문학 최고의 작가도 일상은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주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케이크란 말에서 환기되는 달콤하고 조촐한 행복의 이미지다. 그리고 그것은 실물로서의 케이크 하나와는 오히려 무관하다.

"뭘 좋아하나요?"

하고 물으면 주저 없이,

"케이크"

하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함으로, 나는 살아가고 싶다.     - [케이크] 중에서 67p

 

작가는 평범한 케이크를 행복의 이미지로 멋지게 바꿔 놓는다. 케이크의 달콤한 맛은 누구나 느끼지만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해내는 순간 케이크는 특별한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굳이 작가가 아니어도 깨닫기만 하면 누구든 작가와 같은 감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작가는 우리가 지나치고 놓치는 일상을 감성적으로 깨닫게 해줄뿐이다. 

한국판 제목은 누가 지은 건지 참 멋지다.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단순하게 술이 떠오른다. 한 잔의 술이 주는 취기는 제법 흥겹고 즐겁다. 만약 세상을 손해보지 않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매섭게 노려보기만 한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이 될까? 대신 조금 느슨하게 약간 취한 듯 바라보면 어떨까?  엉망이 될까봐 걱정하지 말자. 예로부터 문학은 술과 가까운 사이였으니까. 팍팍한 세상에 문학을 하는 이들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지 생각하면 고맙기까지 하다. 그들은 우리를 적당히 취하게 만든다.

하찮은 것들이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고,  쉽게 잊혀질 기억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는다.

오랜만에 에세이를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전혀 모르는 작가의 일상이 내 삶 속에 펼쳐진 것 같아 내심 친근감이 든다.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팬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책일 것 같다. 아직 그녀의 다른 작품을 만나지 못한 내게는  그저 편안한 느낌이다. 요즘 부쩍 삭막해진 나의 감성을 확인하기에 제격인 책이었다.

나이들면 술맛을 안다고 했던가. 삭막함을 취기로 달래볼까. 역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생뚱맞은 생각만 든다. 이것이 나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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