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씨의 맛
조경수 외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크게 보면 망각이란, 평소라면 잔혹한 방식으로 보존되었을 것을 품위있게 간직하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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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 향기나 사과 맛이라면 상상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과씨의 맛은 먹어 본 적 없으니 짐작하기가 힘들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알맹이에 대해서 이 책은 이야기한다.

독일 작가 카타리나 하게나의 소설 데뷔작, <사과씨의 맛>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얼핏 새콤달콤한 사과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로맨스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 본 독자라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의 사과에 비유한다면,

각자 주어진 먹음직스러운 사과는 우리의 젊음이 아닐까? 한창 향기롭고 잘 익은 사과를 조금씩 베어물수록 싱그러움은 사라지지만 그 맛과 향기는 내 안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사과의 중심에는 씨과 존재한다. 결코 변하지 않는 진실, 기억 속에서 잠시 접어둘 수는 있지만 지울 수 없는 진실 말이다.

주인공 이리스 베르거는 외할머니 베르타 린셴의 장례식 때문에 보츠하펜으로 오게 된다.

어머니 크리스타와 아버지 디트리히, 주인공 이리스, 둘째 이모 잉가 그리고 막내 이모 하리에트가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외할머니의 유언장이 공개된다. 대단할 것 없는 유가증권이나 돈은 이모들에게 상속되고 낡고 허름한 외할머니의 집은 이리스에게 상속된다. 베르타 할머니에게는 유일한 손녀니까 언젠가는 상속될 집이었다. 만약 하리에트 이모의 딸인 이종사촌언니 로스마리가 살았더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리스는 상속문제로 며칠 휴가를 낸 뒤 외할머니 집에 머물게 된다.

그녀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자신의 직업에서 좋아하는 일은 잊힌 책들을 찾아내기다. 3대에 걸쳐 살아온 외할머니 집은,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던 잊힌 책이 아니었을까?

첫 장에는 델바터 집안의 가계도가 있다. (세심하고 친절한 편집자에게 감사한다. 이 가계도가 없었더라면 이야기에 몰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낯선 외국이름만 보면 헷갈리는 나 같은 독자에게만 해당되는 도움이겠지만 말이다. 일단 이야기에 앞서 가계도를 파악하면 자연스럽게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외할머니 베르타와 열여섯 살에 세상을 떠난 이모할머니 안나의 이야기

베르타의 세 딸들 크리스타, 잉가, 하리에트의 이야기

크리스타의 딸 이리스와 하리에트의 딸 로스마리 그리고 친구 마리의 이야기.

3대에 걸친 그녀들의 삶 속에서 사과씨의 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 속에서 사랑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사과 맛이 사랑이라면, 사과씨는 세월 속에 잊힌 추억이며 진실이 아닐까?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밝혀진 진실은 의외였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녀들은 사과씨처럼 땅 속에 묻어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 사과씨의 맛을 알고 싶다면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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