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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귀 토끼
오오사키 코즈에 지음, 김수현 옮김 / 가야북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한쪽 귀 토끼>는 꽤 귀여운 책이다.
주인공인 나츠는 초등학교 6학년생이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친가로 들어와 살게 된다. 오래된 쿠라나미 저택은 아이의 눈에 뭔가 으스스한 유령의 집처럼 느껴진다. 부모님 모두 일이 생기는 바람에 주말에는 혼자 지내야 하는 나츠는 괴롭기만 한데, 같은 반 친구 유타가 누나인 사유리를 소개한다. 중학교 3학년에 예쁘고 야무진 사유리는 나츠와 함께 쿠라나미 저택에 머물게 된다.
나츠와 사유리, 두 소녀가 한쪽 귀 토끼와 관련된 비밀을 파헤쳐가는 내용은 흥미롭고 재미있다. 상상할수록 귀엽다. 작가의 의도는 미스터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무섭다거나 섬찟한 느낌은 안 생긴다. 그래도 두 소녀의 모습 속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니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도시에서 자란 나츠에게 오래된 전통가옥은 낯설고 위협적일 것이다. 맨 앞장에 저택 도면을 보니 방들이 나란히 있어 사면을 둘러싼 형태이다. 은밀하게 숨겨진 계단과 다락방들은 묘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반면 사유리는 대범하게 모험을 주도한다. 무섭다고 웅크려 숨기보다는 무엇이 문제인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겨우 며칠 간을 함께 했을 뿐이지만 나츠도 점점 용기를 내어 의젓한 모습을 보여준다.
쿠라나미 가와 한쪽 귀 토끼의 불길한 전설은 마치 우리나라의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만 같다. 전형적인 삼각관계, 원한과 복수, 후회 등이 한쪽 귀 토끼라는 상징물을 통해 불길한 저주라는 여운을 남긴다. 약자의 상징인 토끼가 한쪽 귀를 잘린 모습은 왠지 음침하기는 하다. 그래도 오래 전 일인데 쿠라나미 가에서는 토끼와 관련된 물건은 일체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미신적인 면이 강한 것 같다. 귀엽고 사랑스런 토끼가 이 집에서는 기피 대상이라니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그런 불길한 전설이 쿠라나미 가 사람들을 밖으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엄청나게 큰 저택에, 살고 있는 사람은 겨우 몇 사람인 것도 그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나츠의 큰어머니처럼 마을의 명소로 개발한다던가 해서 적극적으로 저택을 개방한다면 더욱 활기차고 좋아질 텐데 말이다.
어린 시절 동네에는 귀신이 아이들에게 공포와 재미를 동시에 주는 존재였던 것 같다. 어떤 집이 귀신의 집이라고 정해지면 그 앞을 피해서 가고, 밤길은 특히 조심해야 했다. 밤에는 귀신이 나와서 잡아가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 때는 어려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이 든 애들의 장난이란 것은 나중에 알았다. 어린 애들은 술래잡기를 피해 달아나듯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었다. 왜 진짜 귀신이 사는지 확인해 볼 생각은 안 했을까?
나츠와 사유리의 모험을 보면서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쪽 귀 토끼로 겁을 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냈으니 말이다. 아직 어린 소녀들이지만 용기만큼은 어른 못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을 살다 보면 겁이 나서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진실이 비록 고통을 줄 지라도 당당하게 마주 설 용기만 있다면 삶은 더 많은 선물을 줄 것이라 믿는다.
이제 한쪽 귀 토끼에게는 귀를 새로 만들어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