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밤
세사르 비달 지음, 정창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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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작품은 마치 실제 벌어졌을 것만 같은 생동감을 주어서 주인공은 바로 작가 자신이라고 말이다. 소설은 허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오히려 그런 기정 사실 때문에 진실을 드러내기가 쉬운 게 아닐까?

작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을 역사적 사실과 연결 지어 그럴 듯한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작품이 마치 그의 삶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져 새롭게 다가온다.

이 책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수수께끼 같은 의문들이 드러난다.

그의 유언에 따르면, 부인에게는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둘째 딸 주디스에게는 은잔 하나와 적은 돈을, 첫째 딸 수재너에게는 자기 재산의 나머지 모든 것을 남긴다고 되어 있다.

도대체 왜 유독 첫째 딸에게만 모든 재산을 남긴 것일까? 생전에 아버지로서 특별한 애정을 보인 적 없는 그가 막대한 유산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로 부인과 둘째 딸을 차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거창한 비밀이나 미스터리는 없다.

그저 푸른색 옷차림의 사내가 등장하는 연극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조금은 과장되고 희극적인 느낌의 사내는 아버지의 친구라고 한다. 첫째 딸 수재너에게만 아버지의 비밀 혹은 은밀한 의도를 알려준다. 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 살았던 딸에게는 아버지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낯설기만 하다. 문득 이 부분에서 진실은 보이지는 않는 법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늘 아버지에 대해 불평만 하던 어머니 곁에서 아버지는 처자식을 버린 남자로 알고 있었는데 한 순간 모든 게 바뀐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비극이란 생각이 든다. 항상 사랑 받고 있었지만 실은 사랑 받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상황 말이다. 결국 아버지가 죽은 뒤에야 딸은 자신이 사랑 받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겉으로 냉정했지만 딸 모르게 그녀를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삶은 행복했을까?

위대한 작품들이 그의 삶을 빛내주었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과 제대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행복하지 못했을 것 같다. 위대한 작가의 불행한 가정사를 본 것만 같다. 어찌 보면 인간적인 절망과 고뇌가 있었기에 역사에 남을 작품들이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은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연극 무대가 아닐까?

책에서는 푸른색 옷차림의 사내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삶을 대변하지만 그의 존재 역시 알 수 없다. 그는 유언장의 비밀을 알려주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들을 설명해준다. 작가의 삶을 알게 된다는 건, 왠지 작품의 비밀을 보는 것 같다. 그것이 얼마나 진실과 가까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왜 제목이 폭풍의 밤일까?

이 소설의 대부분이 푸른색 옷차림의 사내와 딸 수재너가 밤 동안에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바로 그 밤에 폭풍우가 몰아친다. 묵직한 먹구름 속에 감춰진 천둥, 번개, 빗줄기처럼 세상에 드러난다. 시커먼 하늘과 먹구름을 보면 비가 올 것을 알 듯이 폭풍의 밤, 그가 알려준 비밀은 새롭지 않다.

작가가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에 폭풍처럼 탄생한 셰익스피어의 작품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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