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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평점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가 무슨 관계가 있지?
그 만큼 영화 혹은 시나리오에 대한 내 지식은 미약하다. 작가의 얘길 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많은 헐리우드 제작자들이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바이블’로 여긴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시나리오를 잘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시학을 대신하여 좀 더 쉽게 스토리텔링을 설명한 참고서라 할 수 있다.
작가 마이클 티어노는 시나리오 작가 겸 독립영화 <오디션>의 감독이고 현재 이스트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야말로 영화와 시나리오를 가장 잘 이해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장본인이란 생각이 든다. 분명 대학에서도 인기 과목일 것 같다.
이 책은 꼭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시학의 핵심과 실제 영화를 예로 들어 머리에 쏙 들어온다. 왠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관객이 된 느낌이다. 그냥 보이는 대로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왜 감동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야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는 모든 시나리오 작가들이 벽에 반드시 붙여 놓아야 하는 표어다. (21p)
훌륭한 작가는 이야기를 위해 일하고, 시원찮은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일한다. (22p)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를 위해 존재한다. 영화는 관객을 위해 존재한다.
고로 관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잡아낼 수 있어야 좋은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낯선 용어는 ‘액션 아이디어’다. 시나리오에서 가장 기본이며, 한 편의 이야기를 간결하게 요약한 글이다. 그 속에는 인물이 아닌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훌륭한 시나리오는 ‘액션 아이디어’를 그저 듣기만 해도 감동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영화가 주는 감동과 재미는 인물 자체보다는 그 인물이 하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선과 악으로 구분 짓는 것도 결국은 말과 행동이니까. 한국 영화중에서도 인기 드라마 주인공을 내세웠다가 망한 경우를 많이 봤다. 아무리 매력적인 주인공이 나와도 이야기가 전혀 감흥이 없으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 혹은 한국 영화를 보면 이런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문득 영화 <왕의 남자>로 인기를 얻은 이준기란 배우가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남사당패의 모습으로 묘한 매력을 끌었던 반면, 이전 영화 <발레 교습소>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라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이준기라는 배우에게 관심이 생겨 일부러 챙겨 봤다가 실망한 영화다.
동일한 배우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좋은 시나리오는 관객을 유혹할 만한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해내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인물의 창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착해야 된다. 그래야 우리가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싶다. 나쁘게 묘사될지언정 그 속마음은 착하다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해할 만한 특징을 지닌 인물이어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믿을 만한 결점이나 엉뚱함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물의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사랑받는 인물이 탄생된다.
이 책은 마치 반전 영화 같다.
<시학>의 중요성을 잔뜩 강조하며 설명하다가 마지막에는 <시학>이 알려준 모든 규칙을 비틀라고 충고한다. 결국 <시학>의 핵심은 각자 자신의 영혼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정해진 규칙대로 쓰인 평범한 시나리오로는 관객에게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통해 영화라는 세계에 한 걸음 다가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