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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단순히 재미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뭔가 흥미진진한 의학 미스터리를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책 읽는 중간에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분만 장면이었는데 그 상황이 가슴 뭉클했다. 그러나 이 또한 눈물을 흘렸으니 감동적인 이야기겠구나 짐작해서도 안 된다.
의학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주인공이 의사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외과의사 경험이 있어서인지 의료계를 매우 실감나게 표현해낸 것 같다. 의료계의 현실을 대놓고 비판하면서 의사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인상을 준다. 바로 주인공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소네자키 리에는 지방의대를 졸업하고 수도 도쿄의 데이카대학 의학부 산부인과 조교이다. 전공은 불임 치료이며 의학부 1학년의 발생학 강의를 한 지 올해로 3년째다. 대학병원 소속이면서 아르바이트로 외부 병원인 <마리아 불임 클리닉>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의 활동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의과대학 내에서 발생학 강의를 한다. – 마치 실제 강의를 듣는 듯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독자들을 향해 생명의 신비와 산부인과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묘사인 듯싶다. 지루한 강의는 아니다. 특히 불임 분야에 대해서 사회적 법률문제, 윤리문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학생들은 원초적인 호기심이 더 강한 것 같지만 말이다.
이 책의 주요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사건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지방의 산부인과 의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한다. 부득이한 태아 사망의 결과로 인해 산부인과 의사가 구속된다. 명백히 의료과실이 아니라면 구속은 부당한 판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담당 의사는 보호받지 못한다. 환자나 보호자 입장은 논외다.
리에는 평범한 발생학 강의 속에 의료 체제의 붕괴라는 의료계 현실과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꼬집고 있다. 마치 의료 개혁에 앞장 서서 투쟁하는 용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2. 마리아 불임 클리닉에서 임산부를 진료한다. – 다섯 명의 산모와 여섯 명의 태아(쌍둥이포함)를 진료한다. 세 명은 자연임신이고 두 명은 인공수정을 통한 임신이다. 그녀들을 통해 산부인과에서 벌어질 만한 다양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다소 극적인 부분은 있지만 결코 허황되지는 않다. 원래 병원이란 곳이 생명과 죽음의 실재가 공존하는 극적인 공간이니까.
왜 제목이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이냐 하면 말 그대로 병원 문을 닫게 됐다가 다시 개원하게 돼서다. 출산을 위한 제1차 구급 병원으로서 자리매김을 하여 지역 의료 혁명을 일으킨다는 의미다. 일본의 의료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 병원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긴 힘들지만 결과적으로 여성들을 위한 이상적인 병원임은 확실한 것 같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우리나라는 저출산 대책으로 불임치료에 대한 국가 지원이 시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은 시행하지 않는다는 점이 의외다.
이 책에서 보자면, 의사의 힘으로 의료 개혁을 이끌어내고 있다. 병원 내에서는 얼음 마녀라고 불리는 소네자키 리에와 감히 신이라 불리는 산시 마리아,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원장인 그녀들이다. 완벽한 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존 인물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특별하다.
3. 소네자키 리에의 사생활은 거의 감춰져 있다. – 의료 개혁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만 노출된 것 같다. 전반적으로 냉철한 지성미를 보여주던 그녀지만 마지막에는 다소 충격적인 진실이 등장한다. 원래 불임 시술에 대한 윤리적 논란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결말에 대한 의견 역시 각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소네자키 리에라는 인물에 대해 얼만큼 매력을 느끼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다른 쪽에서 찾고 싶다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 ‘엄마’의 존재에 대해 주목해보시길.
생물이나 시스템이란 재현성을 소실하고 이상을 발현함으로써 붕괴되어 가는 것이므로. (155p)
“무슨 말이야, 새삼스럽게. 아직까지 그것도 몰랐어? 그치만 좀 달라. 난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여자’라고.” (25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