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졌던가 보다.

오랜 만에 담백하고 풋풋한 책 한 권을 만나니 느낌이 새롭다.

이 책의 주인공은 백양나무에서 뻗어 나온 어린 가지다. 어느 날, 박씨의 억센 손아귀에 꺾이고만 어린 가지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무참하게 가지를 꺾을 때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소용 없는 나무의 운명이 왠지 서글퍼진다. 어미나무 곁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자라던 어린 가지는 아픔과 외로움 속에서 홀로서기를 배워간다.

똥친 막대기라니, 어엿한 백양 나무를 몰라보고 이 무슨 괄시냐고 항변한들 소용 없다. 어미나무 역시 지켜주지 못한다. 그것이 나무의 운명이며 꺾인 가지의 비극이다. 오로지 혼자 감당할 몫이다. 늠름하게 하늘을 향해 자라던 나뭇가지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나는 그 운명의 길에 나를 내맡긴 채 어떤 기적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기적만이 나를 회생시킬 수 있다는 믿음도 가치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48p)

세상이 주는 시련을 탓하기 보다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어린 가지가 대견하다. 박씨의 딸 재희를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질 리 만무하지만 재희 덕분에 똥친 막대기 신세를 벗어난다. 그것은 삶의 기적이요, 믿음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서로가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론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도 한다. 세상에 생명을 지닌 존재들은 홀로 때로는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돼지야, 아무도 네 하소연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니? 그런데도 너처럼 무작정 소리를 질러 힘을 빼다 보면, 나중에 살아날 기회가 생겼을 때, 기력을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 네가 현명하다면 냉정하게 흘러가는 주변 사정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뭍으로 기어 나갈 기회를 엿보는 거야. 소득 없이 떠들어 대는 족속은 철없는 인간들뿐이란다. (155p)

그렇다. 어린 가지인 네가 꿋꿋하게 버텨내는 모습을 보니 인간인 나는 한없이 철부지가 된 것 같다. 우리가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듯이 너 역시 한 그루 나무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우리가 하찮게 꺾어버린 나뭇가지조차 소중한 존재임을 너를 통해 배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삶의 행운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너란 존재는 변함 없이 백양나무 곁가지인데 순식간에 나무 막대기로, 다시 회초리에서 똥친 막대기가 되어 한 때의 꿈조차 부질 없는 상황이 되었다. 누가 너에게 이름 붙인 무엇이 너일 수는 없다. 세상에 홀로 선다는 건 타인에게 불려지는 그 무엇이 아닌 진정한 나 자신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많은 시련과 절망 속에서도 내 본래의 모습을, 그 안에 지닌 꿈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따뜻하고 정겨운 그림과 동화 같은 이야기로 순수하게 다가온다. 화려하게 끌리는 멋은 없지만 투박한 우리네 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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